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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3/3][26] / 야곱[3] / 창세기 성조사[7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6 조회수1,512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6.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3/3]

 

이제 야곱은 새 이름 이스라엘로 형 에사우를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동이 트자 하느님은 어둠 속으로 홀연히 떠나시고, 야곱은 간밤에 하느님을 대면하고도 살아남았음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는 그분의 모습을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대화는 많이도 나누었지만, 다시 또 어디서 또 만나도 그분께서 과연 누구이신지를 아마도 모를 게다. 아마도 만나도 만나지 않은 것 같고, 만나지 않아도 만난 것 같은 분이 하느님이신가 보다.

 

더구나 만나고 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하느님이시지만, 야곱은 그분을 만나고도 살아남았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프니엘하느님의 얼굴을 뜻한다. 얼굴을 뜻하는 파님과 하느님을 뜻하는 의 합성어이다. 예로부터 하느님께서는 여러 성조사들에게 자신의 신분 노출을 엄히 삼가셨지만,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 모세에게 이를 친히 밝히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실은 죽음의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야곱은 프니엘에서 얼굴을 맞대고하느님을 뵈었음에도 살아남았음에 놀라 탄식하였다. 이는 마치 하가르가 브에르 라하이 로이 우물가에서의 탄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16,13-14)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간밤에 하느님과 싸워 끝내 축복받았다는 것에 감사를 느꼈다. 죽기를 마다하고 싸웠지만, 죽어야 할 운명을 축복으로 대신했다니 그야말로 감지덕지하다.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 올랐다. 죽기 살기로 버틴 그 무시무시한 긴 밤을 보내고, 새날이 된 것이다. 이제 그 빛과 함께 야곱에게는 새 시대가 열렸다. 아마도 새 마음으로 고향 땅 가나안을 향해 가면서 형 에사우를 어쩌면 가쁜 마음으로 만날 수도. 아니 꼭 그렇게 만나야만 한다. 프니엘, 비록 어둠에서 그 모습은 기억되지 않지만, 그분 얼굴을 그나마 보았다는 야곱이 아닌가! 이스라엘이라는 새 마음 새 이름으로 형 에사우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무튼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나.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란다. 사실 지금도 허벅지 힘줄 부위를 먹는지 안 먹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율법이나 탈무드에는 이런 음식에 관한 금기 조항은 예나 지금이나 아예 없는 모양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당시 유목민들의 음식 습관에 근거하여 성경 편집 과정에 기술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프니엘에서 야곱이 하느님을 만난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배려였으리라. 이십 년 전의 얼룩진 일로, 형의 마음을 다독이고자 그 피눈물 나는 정성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늘 함께하시겠다는 그분과도 실제 겨루면서 만남을 체험했다. 그리고 새 이름으로 거듭나면서 축복까지 받았다. 어제의 야곱이 아닌 오늘의 변화된 이스라엘로 형 에사우를 만날 수 있을 게다. 지난 일을 모두 다 기억하시는 하느님의 극진한 보살핌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그 어려운 밤에도 야곱은 결국 그분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야곱은 죽기 살기로 그 밤을 보내면서 새롭게 태어나면서 나름으로 자신감을 가졌다. 그렇다면 야곱의 이 적극적인 자세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하느님께 의지하려는 기대와 신뢰 때문이리라. 그렇게 그분을 굳게 믿으면서 매달리고 그 복으로 형과 마주한다면 결국은 형과도 화해할 거란 희망마저 가졌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해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직접 고통을 느낌으로써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신다. 그래야 완전한 쌍방의 화해가 가능하기에. 더구나 서로 간에 아픔이 깊게 잠재된 그곳에 하느님의 얼굴이 다가온다면, 그 어떤 찡그린 얼굴도 환한 미소로 피어나리라.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난 야곱의 이야기는 이제 그 절정으로 나아간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형 에사우가 장정 사백 명과 함께 힘차게 초원을 달려오고 있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27. 야곱과 에사우의 만남‘ / 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프니엘,엉덩이뼈,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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