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1 조회수1,75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3월 31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신학교 처음 들어가서

어느 선배님 방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글쎄 이상한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토대가 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해서 조잡해 보이는

복사판 책들이 꽂혀 있는 것입니다.

 80년대 뉴스에 종종 나왔던

간첩이라는 증거로 제시된 불온서적이

이 선배의 방에 있었습니다.
‘혹시 간첩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혼란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 사회를

전복하기 위해 이런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학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구해서

복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신학교에 들어온 저로서는, 또 이제까지

강력한 반공교육을 받아왔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불온서적으로

취급받던 책들이 모두 풀려서

깔끔한 디자인으로 다시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생각의 자유를 침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나와 다른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아닌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을 가리는

사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해야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

사람까지도 구원으로 이끄시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떠나시겠다는 엄포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닫혀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이제 포기할 만도 합니다.

그냥 죄 속에서 죽으라면서

내버려 두시면 더 편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더불어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 줄

십자가에 관해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구원으로

 이끌려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사람들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편협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교육이란 알지 못하는 바를

 알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 트웨인)

소리

언젠가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11시 30분입니다.

낮이 아니라 밤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났기에,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 차량 지나가는 소리,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소리가 저를 일어나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집중하면서

읽다가 문득 침대에서 들었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소리가

제 주변에 있었지만, 집중하다 보니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나를 방해하는

 많은 소리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집중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 소리 자체에 집중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도

이런 소리가 아닐까요?

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소리가 계속 곁에서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경제적 어려움,

판단의 혼란 등이 바로 나를

힘들게 하는 소리입니다.

이것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힘든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당신께

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에 집중해서 소리의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소리에만 집중하면서

못 살겠다고 말합니다.

(꽃이 참 많이 폈습니다. 이 좋은 구경을

저만 하는 것 같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