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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 안에서 무관심과 무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5 조회수1,842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은 제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한 수녀님과 상담을 하면서 기가 막힌 사실을 하나 또 안 게 있습니다. 사실 신앙 안에서 자기가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는 입은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하나만 나름 최대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것 때문에 몇 년을 마음 고생을 한 것이라서 일찍 이런 걸 알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기에 저와 같은 분이 없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최대한 설명을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혹시 상처를 줬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상처를 받은 걸로 됐습니다. 그렇다고 그 상대방이 저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아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서운 것 중 하나가 ‘폐쇄적인 사고’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신앙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해도 폐쇄적인 사고를 가지면 영적인 ‘치매 환자’와 같은 신앙인이 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치매 환자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할 수가 있습니다.

 

무관심과 무시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기본적인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이제 신앙 안에서 이 말의 의미가 가지는 중요한 요소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두 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근데 무관심은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약간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신 건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도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시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도저히 안 통할 때 “‘이방인’처럼 여겨라.”고 하신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건 수녀님이 사용하신 표현이 아닌데 설명의 편의를 위해 제가 생각해서 예를 든 것입니다.

 

때론 성경에도 상종하지 말라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무관심도 무시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을 위해 위험이나 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자신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자신을 무시한 행동으로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관심’과 ‘무시’의 말뜻처럼 그 의미의 차이는 누구나 알지만 그 차이의 경계선은 고정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관심도 때론 장기간 진행되면 무시로 바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상처를 준 사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고의가 없었습니다. 근데 상황은 자신이 상처를 준 결과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건 세상사에서는 전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앙 안에서 문제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 고려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는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걸 하지 않은 것도, 이런 관점에서는 죄라고까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넓은 의미로 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결과가 되는 데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관심도 아무리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라도 그게 상대방에게 심적인 상처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혜롭게 상대가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남에게는 상처를 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조취도 신앙 안에서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될 일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도 다른 의미에서는 함께 모여 사는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는 남을 위한 하나의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희생이 아주 값진 희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노력 봉사도 희생이 될 수가 있지만, 이게 왜 더 중요하냐 하면 마음의 상처는 한 사람의 영혼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영혼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자신의 영혼 구원도 신경써야겠지만, 다른 사람의 영혼도 같이 구원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하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더더욱 값진 희생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한 영혼을 죽일 수도 있고 또 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말로써 설명하면 아주 간단한데, 글인 문어체로 표현을 하려다 보니 좀 갑갑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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