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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묵상 시리즈 제29강]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룻기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1 조회수50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50분 정도 판관기 중에서 삼손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삼손 이야기 들으시면서 여러분은 필요한 영성적인 보물을 캐내셨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룻기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구약 성서의 룻기를 읽으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입니다.

룻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봉건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있어서 고부 관계는 좋은 인상은 아닙니다.

수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힘들게 이루어진 경우가 참 많죠.

강론 들으시는 여러분도 지금은 시어머니 위치지만, 예전에는 며느리 위치에도 있었을 겁니다.

독하게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너그러운 시어머니가 되느냐, 그런데 그렇지 않나 봅니다.

아무튼 고부 얘기가 나오면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보다는 험악한 사태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니 룻기는 룻과 그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마음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것이지요.

요나서와 같이 쉽고도 4장밖에 안 되는 길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반드시 읽으셔야 합니다.

 

룻기에 나오는 시대는 판관들이 통치하던 때라고 했으니, 기원전 한 1150년에서 1050년경의 일이 될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와 사울과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100년, 이때 유대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두 아들 마흘론과 킬욘을 데리고 먹을 것을 구하러 모압 지방으로 떠납니다.

나오미는 매우 마음이 너그러운 여성으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모압땅에서 남편 엘리멜렉을 앞세웁니다.

자기 나라의 기근을 피하여 멀리 이국땅까지 왔는데 안타깝게도 남편이 죽어버린 겁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잘 되려고 한 일이 화를 부르고, 고난을 면했다 싶으면 새로운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며 자기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외국에 나갔는데 남편이 두 아이를 앞세웠다고 한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남편이 죽어버린 타국에서 친구도 없는 그곳에서 생활은 상상만 하여도 괴로운 일일 겁니다.

이 불쌍한 나오미는 필경 토지도 가옥도 없는 형편이었을 겁니다.

그보다도 조국으로 돌아갈 여비조차 없었을 겁니다.

성서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기록이지만 나오미의 고생은 이루 말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남편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두 아들은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았는데 하나는 오르바요, 다른 하나는 룻이었다.’

이 기록만으로는 아들들이 결혼하기까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나오미는

어린 두 아들을 모진 고생 끝에 길러냈고, 그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모압 여인, 역시 외국의 여인이었습니다.

지금에야 국제결혼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지만, 아들딸을 외국으로 유학시키는 어버이들도 내심 자기 자녀가

파란 눈의 아가씨와 결혼하거나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지 않도록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 바로 밑 동생의 딸, 그러니까 제 조카 딸이죠.

조카 딸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조카딸은 피아니스트고 조카사위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둘 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있죠.

처음에 둘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반대했죠.

우리 집안에 국제결혼 한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듯이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 낳고, 아무튼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자식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적극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나라 사람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정일 겁니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은 신앙의 순수성을 존중하는 나라였고, 특히 이국인과의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은 민족이었습니다.

신명기 7장 3절에도 ‘이방인과 혼인하지 말 것이고, 너의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고,

그 딸로 며느리로 삼지 말 것’ 하면서 주욱 외국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법령이 있습니다.

이런 법령이 생긴 것은 이국 풍속이 유대에 들어와 우상숭배에 빠지고 유일신에 대한 정절이 상실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면 신앙의 순수성을 일관하기 위해서 외국인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겁니다.

 

특히 모압은 앞서 기록한 대로 롯과 큰딸 사이에 태어난, 즉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라고 멸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기억하십니까?

딸 둘과 아버지 롯이 하느님의 징벌을 피해서 동굴에서 살았을 때, 큰딸, 작은딸이 차례로 아버지를 술을 먹여놓고 들어가서

아버지의 씨를 받아 옵니다.

근친상간이죠.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이 모압인, 그리고 암몬인이죠.

오늘 나오는 나오미의 며느리들은 바로 근친상간을 통해 나온 이의 후예라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정통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모압인이나 암몬인을 멸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둘이 또 그 아가씨들을 선택한 겁니다.

그래서 모압의 여인들과 내 자식들이 결혼하였다는 일은 나오미에게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모압 여자인 룻과 오르바와 정답게 지냅니다.

 

이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나오미에게 불행은 또 기다리고 있었죠.

아들 마흘론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채 마르기 전에 킬욘도 죽습니다.

연달아 두 아들을 이국에서 잃어버립니다.

이때 조국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기근이 사라졌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두 아들을 앞세운 실의에 찬 나오미는 모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길을 떠나가다가 두 며느리인 룻과 오르바에게 나오미는 말하죠.

‘너희 두 며느리가 죽은 내 아들들과 나에게 그토록 고맙게 해주었으니, 야훼께서도 그처럼 너희를 보살펴 주시기를 바란다.

너희 둘 다 새 남편을 맞아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게 해주시겠지.’

그러고는 두 며느리를 끌어안자 두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죠.

‘안 됩니다. 저희는 어머님을 모시고 어머님 겨레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너희는 돌아가야 한다, 얘들아. 어쩌자고 나를 따라가겠다고 하느냐?’ 나오미는 말하죠.

 

만일에 우리들이 이 며느리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편이 죽었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 여기가 내 나라입니다.

당신의 나라로 가겠다고 하는 시어머니와 이별하는 것이 아마 보통일 겁니다.

또 시어머니도 나 따라오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적극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안 따라가겠죠.

왜냐하면 이스라엘 유대 땅에 가봐야 멸시받을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안녕히 가십시오. 어머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인사하고 자기들도 새로운 인생을 찾아도 좋았을 터인데,

두 사람은 목을 놓아 울면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겨레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그 말에 감격하면서도 여전히 ‘이제 이별하고 너희들도 재혼하기를 권한다’라고 합니다.

오르바는 울고, 울고 또 울며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돌아갔지만, 룻은 결단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룻은 이렇게 말하죠,

‘저에게 어머님을 버려두고 혼자 돌아가라고 너무 성화하시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겠으며,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이 눈 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고 어머님 곁에 같이 묻히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죽음밖에는 아무도 저를 어머님에게서 떼어내지 못합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친정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에게 이런 사랑을 보이는 룻이 참 대단한 며느리요. 아름다운 여성이고 위대한 여성입니다.

룻은 이처럼 말한 후 드디어 시어머니와 함께 긴 여행을 마치고 시모의 고향 베들레헴 마을에 들어옵니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어쩌면 이렇게도 마음이 착한 여성일까?

그녀는 이국에서 남편과 아들 둘을 앞세운 시어머니가 혼자서 터덜터덜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아마 남편이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했을 겁니다.

이제 남편을 대신하여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겠다고 룻은 생각했던 거였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와 룻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고삐는 강한 겁니다.

그녀는 정말 시어머니 나오미의 나라에서 자기도 죽고 싶었던 겁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했던 겁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동시에 시어머니의 신앙과 사랑의 크기도 생각됩니다.

이국인에게 바람받이가 강한 나라에 룻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가지가지의 고통이 상상된다는 얘기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이 그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가라고 그랬던 겁니다. 나 따라오지 말라고 그랬던 겁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모든 것을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고 룻을 고향으로 데리고 갑니다.

둘이 가까스로 도착한 고향에서는 보리타작이 한창이었습니다.

룻은 이삭줍기에 나섭니다.

이삭줍기는 사실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타인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연명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편견의 눈길을 받는 모압 여인이 바로 룻이였던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 착한 룻을 결코 버려두지 않습니다.

 

룻은 우연히 시모의 친척인 보아스의 밭에까지 오게 됩니다.

보아스는 친절하고 돈이 있는 남자였습니다.

열심히 이삭을 줍는 낯선 여인을 보아스는 봅니다.

보아스는 추수하는 일꾼들을 감독한 한 머슴에게 묻죠. ‘저 젊은 여자가 뉘 댁인가?’

일꾼들은 감독하던 그 머슴이 대답합니다.

‘저 젊은 여자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시골에서 돌아온 모압 여자입니다. 일꾼들이 거두면서 흘린 이삭을 뒤따르며

줍게 해달라고 사정하더군요. 아침에 와서 지금까지 앉지도 않고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낯선 여인, 이삭을 줍고 있는 그 젊은 처자가 자기 친척인 나오미를 멀리서 따라온 과부가 된 며느리임을 알고

보아즈는 룻에게 말합니다.

‘이삭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떠나지도 말고, 나의 식솔들과 함께 있어라.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마셔라.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느님을 믿고,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을 나는 들었다.

야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대해 보답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보아즈는 룻을 위해 일부러 보릿단에서 이삭을 떨어뜨려 놓고 줍도록 마음을 씁니다.

이윽고 이 보아즈와 룻은 결혼하게 됩니다.

 

성경의 이때 묘사도 감동적이지만, 그와 결혼에 이르도록 힘을 기울인 것은 다름이 아닌 시어머니였던 나오미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엘리트 의식이 지나쳐서 잡혼을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단순한 육적 혈통의 순수성보다 참 신앙을 존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룻의 이야기는 구약 성서에서 대단히 짧은 이야기지만, 이스라엘 성령 강림절에는 반드시 낭독될 만큼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 룻기입니다.

또한 이 보아즈와 룻에게서 출생한 이가 다윗 왕의 조부였던 오벳입니다.

마태복음 제1장, 즉 신약성서 첫 장에는 그리스도의 족보가 소개됩니다.

신약성서를 처음 펴본 사람은 누구나가 싫증 내며 발음도 잘되지 않는 이름들의 나열 중에 ‘

보아즈는 룻에서 오벳을 낳고’라는 기록을 봅니다.

룻은 결국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겁니다.

만일에 룻을 모합 여성이라고 천대하는 사상이 있었다면, 결코 룻은 성경에 남지 않았을 것이고,

족보에 일부러 ‘룻에게서’라고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죠.

그리스도 족보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와 같이 아버지만 주로 쓰고 있지만,

모친이 족보에 오른 것은 불과 네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이렇게 딱 네 여자만이 등장합니다.

모계가 등장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각기 흥미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의 이야기는 나중에 제가 소개할 것입니다.

또 라합은 외국 여인, 그것도 기생이었던 겁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참으로 세계적으로 전해진 종교임을 이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알 수가 있죠.

족보에 나타나는 여인들은 이방인들이 많았습니다.

 

룻기를 성서로 인정하지 않고, 또 성경에 대해서 악평하는 문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배우들에게 룻기를 낭독시킨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배우들이 룻기를 낭독하자 그것을 들은 반성서주의자들이 너무나 감동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대체 누가 쓴 것인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자기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늘 책도 아니라고 이렇게 비평했던 성경에 나오는 룻기였다는 것을 알고

그다음부터는 성경을 가까이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분들 짧은 룻기이지만 룻이 시어머니를 대하는 모습, 또 보아즈가 룻을 대하는 모습,

그래서 그리스도의 족보의 룻이라고 하는 이름이 올릴 수 있었던 계기 등,

짧지만 강한 여운과 힘을 주는,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이스라엘 성령 강림절에는 반드시 낭독될 만큼 힘이 있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고

룻기를 읽어보시며 마음의 평화를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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