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1 연중 제18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30 조회수1,629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그 모든 노고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2; 2,21-23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2,21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22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23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코헬렛의 저자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하고 말한다.

 

 

 

 

 

 

 

 

2독서

<여러분은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5.9-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1절 앞부분은 2.20 앞부분과 병행구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 1절은 2절과 병행이다.

 

함께 일으켜셨다면”: 내용상 2.13을 연상시킨다. 2.13은 세례와 직결된다. 물론 벌써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아갔다는 말은 아니고, 믿는 이와 구체적인 삶이 세상에 나타나야 할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있는 을 가리킨다.

 

찾으시오”: 현재 명령법으로 지금 바로 실천해야 함을 뜻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2

위에 있는 것1절과 병행문이지만 2절의 앞뒤 부분은 서로 반명제로 되어 있다.

 

1절의 찾으라생각하라는 서로 보충설명하는 병행어다. 이들은 초대교회의 훈계용어다. 두 명령 모두 2.16. 20.21에서와는 달리 직접 초대 공동체를 겨냥한다. “위의 것을찾고 그것만을 생각하라는 명령 내지 그 당위성의 근거는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한다는 데 있다.

 

하지 말라는 부정문을 통해 압축의 대립이 꾸렷해진다. “땅에 있는 것은 곧 인간적인 적, 세상 전체, 세계 내적인 것을 지칭한다. 1절에 이어 이곳 2절에서도 위에 있는 것을찾도록 명한다. 그 내용은 12-17절에서 밝혀진다.

 

 

 

3

원문에서 이 구절은 가르로 시작된다. , 콜로사이 공동체가 왜 위에 있는 것을추구해야 하는지 앞 구절에서 명령한 이유를 밝힌다. “그리스도와 함께를 중심으로 볼 때 3절은 1절과 병행한다.

 

여러분은 죽었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음을 뜻한다. 이제야 비로소 위에 있는 것을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명백해졌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와 더불어 공동체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숨겨져 있다. 감추어져 있다는 수동형 과거로서 이미 이루어진 행위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공동체의 현실적 삶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본연의 의미를 뒤따르는 4절에서 명확해진다.

 

 

4

이 구절은 1.18을 더 함축적으로 또한 1,15-17을 더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그리스도와 공동체 사이의 끈근한 관계가 요약되어 있다.

 

여러분의 생명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함으로써 지금까지 말해온 신비에 대한 진술이 절정에 이른다. 달리 표현하면 세례받은 이들의 삶은 곧 그리스도란 뜻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다시 살아남에 대해 참조. 다른 삶,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은 삶은 결국 위선적인 삶이다.

 

나타나실”. 이 동사는 미래지향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계시된다는 말은 곧 공동체의 삶이 무엇인지가 밝혀진다는 말이다. 그 때는 아무것도 감추어진 채 있을 수 없게 된다.

 

영광 속에”: 재림의 영광.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실 영광을 일컫는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이미 그러한 영광의 신비에 현실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삶은 이미 가시적이며 감각적인 이 세상 차원을 뛰어넘은 삶으로 이어진다. 세례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왜하하면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그분과 더불어 죽었기 때문이다. , 위선적이고 가짓적인 이 세상 삶은 죽음을 통해 부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현양되신 주님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에 이에 지금이라는 현실적 차원과 미래에 완성될 모습 사잉에 긴장이 서려 있다.

 

 

 

5

땅에 있는 지체들”: “지체들은 교회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 육체의 지체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땅에 있는 것은 앞 단락에서 강조한 윙 있는 것과 대조된다. 땅에 있는 것은 중요성을 띠지 못한다. 그것은 참된 것에 속하지 않으며 옛것에 속할 뿐이다. 따라서 없애 버려야 한다.

 

음행에 뒤이어 나오는 일종의 부도덕 목록은 주로 훈계에서 사용되는 전형적 표현방식이다. 첫째로 꼽은 음행은 무질서하고 무계획적인 삶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결국 탐욕과 다를바 없다 하겠다. 이는 사회적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이교도적 습성을 가리킨다.

 

죽이시오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죽었다는 내용을 상기시키며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을 따르라고 촉구한다.

 

 

 

9

거짓이나 속음수는 참 인간의 본성에. 그리스도인의 본질에 근본적으로 어읏나기 때문이다.

 

벗어버리다무엇을 전적으로 벗어버리다. 내려놓다라는 뜻을 지닌다. “묵은 인간과의 근본적인 절교를 말한다. 타협의 여지 없이 지난날의 묵은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10

내용상 이 구절은 1고린 5.17에 기초한다. 이로써 3,1-2에 제시된 당에 있는 것위에 있는 것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입다세례때 입던 옷을 연상시킨다. 그 본연의 내용은 12-17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묵은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 갈아입는다는 말은 모든 것에 앞서 또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생각함을 뜻한다. 이로써 세례받은 이는 새로운 창조질서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다. 그로부터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뛰따른다.

 

누가 묵은 사람인지는 그 행위를 보고 알 수 있다고 말했다(3,5-6). 그에 반해 새 사람이 누구인가는 여러 가지 특징을 통해 밝혀진다고 본다.

 

지식”: 자신을 지어내신 창조주가 누가이신지를 깨닫는 지식 또는 그분의 뜻을 헤아릴 줄 앎을 말한다. 누가 이 지식에 도달했다면 그는 이미 새 사람이다.

 

 

 

11

11절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에 뒤따르는 결과일 뿐이다.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을 상대화시킨다.

 

11절의 병행구로 갈라 3.28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진술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세례받은 이들 가운데도 인간적 구별은 존재하지만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가 그 모든 차이나 구별을 극복시킨다는 것이다. 이 사상 이면에는 1,15-20이 자리잡고 있다. 11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9-10절과 더불어 읽어야 한다.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상속시비

12.13-14는 상황묘사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나는 까닭에 상황어 양식에 속한다. 원칙적으로 율사가 민사소송의 판결을 내리는 법이지만 율사가 없을 때는 율법에 밝은 사람이면 누구나 시비를 가려 줄 수 있었다. 예수님도 이런 분으로 통하셨기에 상속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는 부탁을 한 마디로 물리치셨다. 그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구원하는 일에 주력하실 뿐. 경제 문제에 개입할 뜻이 추호도 없으셨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는 루카의 전형적 연결문이다. 따라서 루카는 따로 전해오던 단절어를 이 자리에 배치했다 하겠다. 마르 8,36-37에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있는 사실로 미루어 이 단절어는 예수님의 발설일 가능성이 있다. 또는 초대교회에서 자주 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고한 사실로 미루어 초대교회의 창작일 가능성도 있다.

 

자기 소유는 직역하면 자기에게 있는 것들인데, ”소유는 루카의 애용어다.

 

 

어리석은 부자 예화

12,16-20 역시 루카 특수자료다. 루카는 이를 비유라 하나 실은 비유가 아니고 예화다. 비유인 경우에는 이야기의 뜻을 애써 찾아야겠지만, 예화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 예화를 읽으면 재력은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 부자는 인생을 만끽할 계획을 세우지만 하느님은 그를 비웃으신다는 것을 절로 깨닫게 된다. 루카 특수사료에는 예화가 흔한 편이다.

 

 

21

21절은 루카의 가필. ”하느님 앞에 재물을 모으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밝히려면 21절과 내용이 비슷한 구절들을 참작해야 한다. ”여러분의 소유를 팔아 자선을 베푸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헤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시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짐작컨대 하느님 앞에 재물을 모으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이웃에게 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헤/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