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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3 주일(교황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27 조회수2,360 추천수11 반대(0)

오늘은 6월의 마지막 주일이고 전 세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애쓰시는 교황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교황 주일입니다. 권위는 있지만 권위주의적이지 않게, 신자들 위에 군림은 하지만 오직 사랑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다스리기는 하지만 오직 봉사하는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합니다.

 

유튜브는 다양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저는 주로 강의를 듣거나, 미국 뉴스를 듣기도 하고, 음악을 듣습니다. 동영상을 다 보면 유튜버들이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눌러주신 좋아요와 구독은 더 좋은 영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저도 마음에 드는 영상물이 있으면 좋아요를 누르곤 합니다. 잠깐의 관심이 모이면 몇 백만, 몇 천만이 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으면 부정과 부패가 자라지 못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깨어있는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은 그 나라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에 따라서 정해집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방역 수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사회적인 거리두기를 지키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의심증상이 있으면 즉시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를 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방역 대책과 국민들의 참여가 함께하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고,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예수 승천 대축일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날을 홍보주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로나19로 홍보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신문 홍보를 하였고, 구독을 부탁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보내는 것이 귀찮을 수 있습니다. 구독료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신문구독을 신청해 주셨고, 후원금도 보내 주셨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희 신문사는 신협과 거래를 합니다. 가깝기도 하고, 광고주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협이기에 가능한 범위에서 편의를 봐주기도 합니다. 신협의 정신은 일인은 만인을 위해서, 만인은 일인을 위해서입니다.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신협의 정신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과 비슷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고,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고, 그분의 십자가와 죽음으로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인 성녀들의 전구와 우리들의 기도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참된 위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엘리사는 나이가 많은 부부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엘리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엘리사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엘리사는 부부가 원하는 것이 자녀의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내년에는 부부에게 자녀가 생길 것이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노부부의 선행은 그렇게 바라던 자녀의 축복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와이에서 사는 젊은이가 사제관으로 먹을 것을 보내왔습니다. 이곳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하와이에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신부님들을 위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를 보지 못했지만 좋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신문사에도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문 앞에 마스크를 놓고 가셨습니다. 어떤 분은 과일과 음식을 놓고 가셨습니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우주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두운 우주를 비추는 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나눔의 빛을, 희망의 빛을, 사랑의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행을 넘어 희생과 봉사를 이야기 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 질병, 어려움의 십자가 상황에서 그렇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외로 많습니다. 딸을 교통사고 잃어버리고 불쌍한 어린이를 돌보는 데 전 생애를 바치는 아버지, 민주화를 외치다 죽어간 아들을 대신하는 어머니, 그 모습들은 십자가를 지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십자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찾는 것도 아니고 바라만 보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짊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삶 안에 받아들여 주님처럼 등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삶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비록 시작은 작을지라도 가정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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