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9.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16 조회수2,34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코린 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복음 루카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자기 삶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계획을 세워 지켜나가며

그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열심히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유골함에 담겨

 갑곶성지 봉안당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안치 전, 그분의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망하게 암에 굴복해서

주님 곁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기억하시는 배우자인

자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펑펑 우십니다.
“좀 놀다가 가지. 그렇게

힘들게 고생만 하다가 가셨어요.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죽음 앞에서 사람들 모두 후회합니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특히

 사랑하지 않았음을 후회합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

특히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이라 불리는 이 시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아직 살아있을 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더욱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 사랑의

 중요성을 오늘의 독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금욕 생활을 하는 세례자

 요한을 보고서는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철저하게 거절하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에 맞춰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을, 용서보다는

 다툼을, 함께 하기보다는 욕심으로

인해 혼자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의 계획 자체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알 수 있도록, 더욱더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오늘은 이렿게 행복하세요♡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은 것을 세상에 주어라.

그것이 결국 당신이 받게 될 것이니까.

(게리 주커브)

이런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 캅(John Cobb),

그리핀(David Griffin)과 같은

신학자들은 신이 다음과 같은 존재라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1) 신이 도덕군자로서의

엄한 심판자이기만 하다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신이 세상의 고통과

비극에 무감각한 절대자라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신이 인간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통제자라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신이 부조리한 현실을

 옹호하고 묵인하는 존재라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5) 신이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성을 가졌다면,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이런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대전교구 합덕성당의 성가정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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