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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르6,45-5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6 조회수94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6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 (마르6,45-52)

  

1독서<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10-11.12-13(◎ 11 참조)

◎ 주님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약한 이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복음<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마르6,45-52)

45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제1독서 (1요한4,11-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좇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8)

 

여기서 '두려움'으로 번역된 '포보스'(phobos)는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큰 기적과 기적적인 일앞에 사람들이 보인 두려움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마르4,1; 루카2,9; 요한7,13).

또한 가까운 미래에 닥칠 고난과 환난으로 인한 두려움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묵시18,10).

 

요한 1서 4장 18절 후자의 의미로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두려움을 나타낸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하느님의 임재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가진 자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이 영적 담대함을 가진 자는 심판 때 죄인들이 갖게 되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완전한'으로 번역된 '텔레이아'(telleia)의 원형 '텔레이오스'(telleios)는 '온전한','성숙한'이라는 뜻이다(1코린14,20; 콜로4,12; 야고3,2).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인 사랑안에서 성도들이 목표로 삼고 이루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완전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삶속에 실현하는 사랑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랑은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의 두려움조차 쫓아낸다.

 

한편 '쫓아냅니다'로 번역된 '엑소 발레이'(ekso ballei)는 '밖으로 내던지다'라는 뜻이다.

먼저 '내어'로 번역된 '엑소'(ekso)는 장소적 이동을 뜻하는 전치사로 '안에서 밖으로'라는 뜻이며, '좇아' 번역된 '발레이'(ballei)의 원형 '발로'(ballo)는 '던지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엑소 발레이' 내부에 있는 어떤 것들을 밖으로 던져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완전한 사랑이 그 사람 내부에 있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의 생각과 마음 밖으로 던져 제거한다는 뜻이다.

 

참된 사랑안에 머무는 자에게는 궁극적인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그는 그것을 담대하게 극복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랑과 두려움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사랑이 지배하는 자에게 두려움은 설 자리가 없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두려움은 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할 수 있다. 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형벌이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혼동해서는 안된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가지는 그분께 대한 합당한 존경의 감정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심판을 두려워하는 죄인들이 갖는 감정으로서 그곳에서는 반드시 합당한 형벌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이 형벌을 인식함으로 인하여 더욱 더 두려워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형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벌' 번역된 '콜라신'(kollasin)의 원형 '콜라시스'(kollasis)는 신약에서 본절과 마태오 복음 25장 46절에 단 2회 사용되었다. 마태오는 이 단어를 최후의 심판의 날, 죄인들이 받게 될 영원한 벌 가리킬 때 사용했다.

 

여기서도 '콜라신'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죄인들에게 내려질 영원한 지옥벌 뜻한다.

한편 본절에서 사랑과 두려움을 대조하며 공존할 수 없는 관계로 묘사하면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께 대한 비정상적인 두려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있어서 큰 장애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주님 공현 후 수요일 복음 (마르6,45-52)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1)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 11장 28~31절에 나오는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확인하고, 자신도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으로 결국 물에 빠진 사건을 생략하고,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그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 기사만을 묘사하더라도, 제자들의 불신앙과 예수님의 하느님 아들로서의 신적인 능력을 부각시키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르시니'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he climbed into; he went up)와 '멎었다'에 해당하는 '에코파센'(ekopasen; ceased; died down) 두 개의 부정 과거 동사가 접속사 '카이'(kai; and)에 의해 연결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동사를 연결하고 있는 접속사 '카이'(kai)는 여기서 거의 동시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마자 곧바로 바람이 멎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느님 아드님 되심과 초자연적인 능력이 잘 드러나는 실례로서, 당신이 자연을 초월하며 주관하는 '자연의 주'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여기서 '놀라'에 해당하는 '엑시스탄토'(eksistanto; they were completely amazed)의 기본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두다'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가 결합된 형태로서 그 어원적 의미는 '어떤 물건을 밖에 두다'이다.

이 동사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정신을 잃다'는 의미가 되며, 성경에서는 '정신이 나가다','미치다'(2코린5,13), '놀라다'(사도8,13)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도 이 동사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동사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사용되어, 정신이 나가 어안이 벙벙해하는 제자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 계속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6장 50절의 '겁에 질렸던 것이다'는 표현과 6장 52절의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신 사건을 믿음과 신뢰의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제자들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님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 마르 6,45-52 † 기적과 일상의 조화

 

2021.1.6. 복음묵상2 

(마르 6,45-52)

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그 기적의 장소를 떠나도록 재촉하십니다왜 그리셨을까요? (요즘 같으면 큰 성지가 됐을텐데 과연 지그의 성지가 올바른건지~) 결론은 5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예수님은 왜 함께 가시지 않았을까요그리고 왜새벽녘에서야 그것도 물 위를 걸으시어 가셨을까요?

저녁()에 존재들에게 아침(하늘)으로 다가가심입니다.

창세 1,(창조 이튿날)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그대로 되었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이튿날(욤 쉐니-예수님은 하늘의 물곧 생명수 그 말씀으로 오셨습니다그 하늘 위의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 하늘 위의 말씀()이 아래땅의 말(어둠)을 밟고 오심입니다마셔도 마셔도 다시 목마르는 땅의 물곧 영원한 생명수가 될 수 없는데도 거짓에 속아 그 땅의 물을 먹고 갈증에 허덕이는 그 사람의 말계명을 밟고 오심입니다.(티토1,14)

하늘의 덮으심대속의 말씀()을 땅의 선택으로 말해준 그 뱀의 거짓그 땅의 말()을 밟으심입니다.(창세3,15)

 

요한 4,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물변하지도 마르지도 않는 영원히 솟아나는 살아있는 생수말씀입니다.

 

요한 7,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창세 2, 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네 줄기를 이루는 강하나 에덴하늘에서 내리는 네 줄기 물~~

구약의 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신약의 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복음입니다그리고 그 성경복음은 다 예수 그리스도 만을 말합니다. (루가 24,44 외 다수)

그 예수님께서 땅의 갈증을 해소 시키시려 오셨습니다땅의 물을 하늘의 물 인냥 먹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묵시21,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땅의 죽음의 물을 살리시려그 죽은 물의 짝(욤 쉐니으로 오신윗물 그 예수님 이십니다곧 예수의 죽으심입니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두려워하지 마라.”

아랫물의 짝으로 걸으심그 짝으로 오심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신기한 기적의 유령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모든 말씀 속에서 숨겨진 그 신의 죽음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나다. -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탈출 3,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 하고 대답하시고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말입니다대속의 성자  하느님께만 죄인들의 용서- 생명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 1요한 4,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가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내 십자가임을 깨닫고 믿고 의지했을 때 그 십자가의 사랑 그 예수님의 사랑이 짝으로 내 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완성 되는 것 우리 사랑의 완성입니다그러면 두려움이 없습니다예수님의 대속으로 심판이 없어졌으니까요.

 

히브 10,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고해성사를 봐도 마음이 자유롭지 못함은 그리스도의 대속그 죽음그분의 피의 값양심까지 깨끗하게 하시는 그 전지전능하신 사랑을 모르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의 행위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용서 받는 것입니다.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있는 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순종합니다.

 

히브 1,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오른쪽오른올바른 진리라는 뜻입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 기적에 묶이면 마음이 완고해 집니다죽었던 나자로가 살아난 그 기적을 본 이들이 마음이 완고해 져서 자신들의 짝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였쟌아요? (요한11,53참조)

죽음과 부활은 짝입니다예수님(하늘)의 죽음과 부활이 죄인들의 생명이며 그 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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