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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만 뜨면 용서하십시오! 밥먹듯이 용서하십시오!(양승국스테파노신부님)
작성자박양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13 조회수1,79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0년 9월 13일 주일

[(녹) 연중 제24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양승국스테파노신부님 

눈만 뜨면 용서하십시오! 밥먹듯이 용서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 평생에 걸쳐 매일 매순간 밥먹듯이 되풀이해야하는 매일의 과제, ‘용서’에 대해서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18장 22절) 

우리 모두 용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덮어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용서란 개념이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오면, 훨씬 폭넓은 의미로 확장됩니다. 잘못한 사람의 죄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을 넘어섭니다. 용서의 대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의로운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을 포함한 하느님의 거룩한 구원 활동이 곧 용서입니다. 

2007년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몰고왔던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있습니다.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모든 것을 잃고 난후,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신애에게 업친데 덮친격으로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유일한 희망이고 의지처이던 아들이 유괴·살해된 것입니다. 

너무나 큰 충격 앞에 주저앉아 있던 신애는 오로지 신앙에 매달리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면회하러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를 용서해주러 간 것입니다. 

면회실에서 신애는 살인범의 태도에 또 한번 무너지고 맙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백번천번 준비했던 말을 꺼내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란 말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살인범은 세상 편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제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신선같은 미소를 짓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온 신애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습니다. 이렇게 외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용서 받았데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또 다시 그를 용서하냐구요?” 

곰곰히 따지고 보니 용서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에는 식별과 절차와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큰 상처를 입었는데, 원인을 곰곰히 분석해보니 50:50 쌍방과실이라면, 용서하는 게 맞습니다. 50:50까지 아니어도, 상대방이 70, 내가 30 정도 된다 할지라도, 억울하겠지만 큰 마음 먹고 용서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1:100 같은 경우도 만납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럴 경우에 필요한 것이 용서 이전에 정당한 과정이요 절차입니다. 때로 징계나 처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뒤따라야겠지요.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용서인 것입니다. 

씻을수 없는 깊은 상처와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준 인간 말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큰소리 떵떵치는 사악한 존재들, 피해자들은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해맑은 얼굴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인간들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섣불리 용서했다가는 나중에 두고두고 홧병을 앓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인생이나 가족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범죄자들,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일제군국주의자들, 친일파들, 자기 한목숨 건지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 사익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군부 독재자들은 그냥 용서하면 안됩니다. 합당한 처벌과 배상, 진정성있는 사과가 반드시 먼저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물론 무조건적 용서는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노력이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일흔일곱번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눈만 뜨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밥먹듯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인간의 힘으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하느님께 맡겨드려야겠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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