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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열왕11,29-32;12,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4 조회수1,085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열왕11,29-32;12,1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 (29-30)


'아히야'(ahiya)는 '주님의 형제' 라는 뜻이다. 그는 에프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shiloh)의 사제 가문 출신으로 다윗과 솔로몬 초기에 활동했던 나탄 선견자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 시대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함으로, 이스라엘에 큰 영향을 끼친 충실한 선견자였다.


그는 일생동안 철저히 하느님만을 따랐으며, 훗날 예로보함이 하느님께 범죄하였을 때까지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냉철하게 에게 경고와 심판의 말씀을 전했다.(14,1-13)


새 성경은 예로보암이 아히야 예언자를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은 반대이다. '와이므차 오토' (waimtsa otho)는 '그를 만나니'로 번역되는데, '만나니'에 해당하는 '와이므차'는 '발견하다' (창세36,24), '찾아내다' (1사무12,5)라는 뜻을 가진  '마차'(matsa)의 단순 능동태(Qal)에, 행동이 즉각적으로 이어짐을 나타내는 계속적 '와우' (wau)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를 찾아내었다.' (that ,,,, found him)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자연스럽고 우연하게 만난 것이 아니라, 선견자 아히야가 적극적 의지를 갖고 예로보암을 찾아가 만났음을 나타낸다.


선견자 아히야가 보여주는 이같은 신탁에 대한 적극적인 증언 자세는 솔로몬에 대한 예로보암의 반란이, 단순히 지파간의 갈등 즉 세력 다툼의 과정에서 빚어진 정치적 결과물이거나, 한 개인의 야심 즉 예로보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예로보암을 사용하셔서, 솔로몬의 죄악을 징계하시기 위한 목적에서 발생한 심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예언자는 '새 옷' 입고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새 옷'(새 의복)은 남북으로 분열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신생왕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징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입은 적이 없는 새 옷은 앞으로 이루어질 심판이 어떤 인간적인 요소의 개입됨이 없이, 오로지 하느님에 의해 비롯되고 준비될 것이라는 신적 기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옷'으로 번역된 '살르마' (salma)는 어떤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는 정식 의복이라기 보다는 밤에 덮고 잘 수 있는 '담요' (신명22,17)나 물건을 쌀 수 있는 '보자기'(1사무21,9)를 의미하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아히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효과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찢기에 용이한 담요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걸치고 왔음을 뜻한다.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0)


찢어진 옷을 통해 왕권의 이동을 상징하는 것은, 이미 선견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할 때에도 사용된 바 있다.(1사무15,27-29)

그러나 솔로몬의 경우는 사울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사울은 사무엘 선견자로부터 폐위 선고를 받고, 급한 나머지 사무엘을 붙잡는 과정에서 그 옷이 찢어져,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와 심판의 결과를 스스로 드러낸 반면, 여기서는 선견자 아히야가 스스로 자신의 옷을 잡아서 찢음으로 하느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선견자는 하느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본문의 행동은 하느님 자신의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열두 조각'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결국 이스라엘 왕국 분열이란 우연한 사건이거나 사람의 계획에 의한 결과가 아니고, 하느님의 주권적 계획과 의지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열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31-32)


열두 조각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유다와 유다지파에 흡수된 시메온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열 조각)를 예로보암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가르시는 하느님의 주도적 행위를 통하여, 예로보암이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왕권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손에서 ~~너에게 주겠다' 에서 '손'은 '야드'(yad)로서 단순히 인체의 한 부분을 지칭하는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돌봄 그리고 지배를 포함하는 권한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권세와 관할 에서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취하여 너에게 준다는 말이다.


예로보암은 요셉 지파의 공사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일개 감독으로서,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솔로몬의 거대한 권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그만한 권세를 가진 자인데, 전능하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그분의 손에 의해 시행될 사건이기에, 하느님꼐서 친히 솔로몬의 권능을 파하여 그의 관할 아래있던 10지파를 찢어내어 예로보암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지파만은" 솔로몬에게 남겨둔다는 말이 나오는데, 12지파에서 10지파를 빼니, 두 지파가 남는다. 그런데 한 지파라고 말하는 것은, 시메온 지파와 유다 지파를 하나의 지파로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 대하여 예언할 때, 레위 지파와 더불어 시메온 지파는 흩어져 버림을 당할 것으로 예언되었다.(창세49,5-7) 이 예언대로 시메온 지파는 한 지파로서의 독특성을 잃어 버렸으며, 유다 지파에 할당된 지역인 남부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여호19,1-9)


따라서 여기서도 시메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한 지파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다윗과의 계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일부를 다윗 후손의 통치하에 남기셨음을 의미한다.


열 지파를 받은 예로보암에 비교하면, 다윗 왕조의 왕권은 극히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위를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성실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약속은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나신, 영원한 왕이시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성취되고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다.

 

 

ps: 예언자- 선견자 는 수사사제님의 글을 존중하여 고치지 않았으니 새겨서 보세요.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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