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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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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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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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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5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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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월요일
6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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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화요일
7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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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수요일
8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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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9일(금)
(
녹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0일(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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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1일(
일
)
(
녹
)연중 제24주일
12일(월)
(
백
)한가위
13일(화)
(
백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14일(수)
(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15일(목)
(
백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6일(금)
(
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17일(
토
)
(
녹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18일(
일
)
(
녹
)연중 제25주일
19일(월)
(
녹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20일(화)
(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1일(수)
(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22일(목)
(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23일(금)
(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24일(
토
)
(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25일(
일
)
(
녹
)연중 제26주일
26일(월)
(
녹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27일(화)
(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28일(수)
(
녹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29일(목)
(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30일(금)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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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는 1581년 프랑스 아키타니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툴루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600년에 사제품을 받는다. 한때 여행 도중 해적들에게 붙잡혀 옥살이와 노예 생활을 하였다. 특별히 그는 애덕의 실천에 관심이 많아, 고아와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660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빈체시오 사제를 클레멘스 12세 교황이 1737년 시성하였으며, 레오 13세 교황은 1885년 모든 자선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루카 4,18 참조
주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난한 이의 복지와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복된 빈첸시오 사제에게 사도의 열정을 부어 주셨으니, 저희도 같은 정신으로 그가 사랑한 것을 사랑하고 그가 가르친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즈카르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있을 메시아 시대의 행복에 대하여 전한다. 많은 민족들과 나라들이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고, 유다인에게도 하느님 계신 곳에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할 때가 오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 일행을 거절한다. 제자들은 격분하여 벌을 내리기를 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돌아가신다(복음).
제1독서
<많은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주님을 찾아오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8,20-23
20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7(86),1-3.4-5.6-7(◎ 즈카 8,23)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
○ 나는 라합과 바빌론도 나를 아는 자로 여긴다. 보라, 에티오피아와 함께 필리스티아와 티로를 두고, “그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하는구나. 시온을 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
복음 환호송
마르 10,45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하느님, 복된 빈첸시오에게 성찬의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셨으니, 이 제사의 힘으로 저희도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천상 성사로 힘을 얻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빈첸시오의 모범과 전구로 도움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성자를 본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제자들이 의기양양해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임금이 되시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마저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서 길이 막힙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사흘 정도 걸리는데 사마리아 지방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지방은 과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렸을 때 북왕국에 속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일찍이 아시리아 침공 이후 혼혈 지역이 되었고 혼합 종교를 신봉하던 터라 유다인들은 그들과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지방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는 장소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리짐 산이었기 때문에,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차별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사마리아인들이 거부하자 제자들이 격분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옛날 주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느님께서 내리신 말씀을 거부한 아하즈야 임금의 군대들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삼켜 버렸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2열왕 1,10-12 참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힘과 세력을 느낀 제자들은 이번 기회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불살라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이 예언자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막으니, 그들을 혼내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정의를 내세워 폭력으로 누르고 뚫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사랑의 길이 아니면 돌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다리고 참으며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 안에 잠재된 분노와 폭력성이 정의라는 탈을 쓰고 종종 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런 예수님의 큰마음을 우리는 언제나 배울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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