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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자성사] 병자성사, 그 예식과 장례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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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9-07-02

[전례와 상징] 병자성사, 그 예식과 장례 예절

 

 

병원이란 말은 영어로 hospital이라 하고 그 어원은 라틴어로 hospitalia인데 낯선 사람들을 위한 숙소란 뜻이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낯 모를 여행자들을 손님으로 잘 대접하였고 이런 풍습은 그리스 로마 사대에도 전해져 병원은 환자를 재워주는 곳으로 불렸다. 프랑스의 고전적 명칭으로는 병원을 ‘Hotel Dieu’ 즉 하느님 집이라고 하였고 지금도 로마나 서독 등지에는 병원 겸 성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남아 있다. 이런 발상은 ‘환자가 하느님의 손님’으로 영접되기를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즉 환자는 하느님 곁에서 고향을 찾는다. 환자들은 성당에서 신자들과 더불어 전례에 참여하고 봉사자들의 시중도 받으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바칠 마음의 준비까지 새로이 한다. 그러나 오늘날 병원에 경당이 마련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병원이나 성당은 환자들을 위한 전례적 배려나 흉사를 외면하는 듯하다.

 

암환자에게 죽음을 알려야 하는가? 죽어가는 환자에게 산 이의 관심은 심리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사목적으로 본다면 안심사키는 일만이 아니라 진리의 길을 택하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은 곧 죽음에서 시작된다. 산 자는 병고(病苦)의 뜻을 깨닫고 기도로 성화(聖化)하며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신앙의 빛을 받아 수난하시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결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로마 8,17)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4,13).

 

병자성사란 죽을 환자만 받는가? 병자성사는 글자 그대로 병자와 허약자를 위한 성사이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야고 5,14-15). 과거에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이 성사를 주었으나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병자성사를 받아야 한다. 병자에 대한 위독 상태의 판단은 의사의 진단과 상식적인 선에서 결정할 일이다. 병자의 성사를 수여할 대상자는 다음에 의한다.

 

1. 병자가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병들었을 때, 또는 동일한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는 경우에는 병자성사를 거듭 줄 수 있다.

 

2. 위험한 병 때문에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할 때마다 병자는 수술 전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3. 노환으로 말미암아 기력이 많이 쇠진해지는 노인들에게는 병세의 위험성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 성사를 줄 수 있다.

 

4. 어린이들에게도 그들이 이 성사로써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이미 이성의 활동을 갖추었을 때에는 역시 병자의 성사를 줄 수 있다.

 

5. 의식이 없는 병자는 평소의 신앙심으로 병자성사 받기를 원한 것으로 간주하여 성사를 줄 수 있다. 병자가 이미 죽었을 경우 사제는 그를 위해 기도는 하지만 병자성사는 줄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병자가 확실히 죽었는지 의심스러우면 조건부로 줄 수 있다.

 

 

병자성사의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병자성사 예식서(1975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편찬)에는 병자 방문으로부터 임종을 돕는 예식까지 6가지의 예식을 담고 있다. 그중 중요한 병자성사 예식과 노자성체에 관하여서만 살펴보겠다. 병세로 보아 가능하고 또 특히 병자가 영성체하려 할 경우, 병자의 집이나 병원 또는 적당한 장소에서 미사 중에 병자성사를 줄 수 있다. 복음과 강론이 끝난 다음 호칭기도나 안수로부터 이 성사를 진행한다. 병자성사 예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개식(開式) (2) 참회(懺悔) (3) 서서 낭독 (4) 호칭기도 (5) 성유축성 (6) 도유 (7) 폐식이다.

 

맨먼저 사제는 병자와 가족들에게 인사한다. “이 집과 여기 사는 모든 이에게 평화” 또는 “주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사제가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한다. 그래서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인사 말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한다. 환자의 방은 주님의 소유이고 그분의 거실이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은 치유와 구원을 베풀게 된다.

 

다음에 병자와 그 방에 성수를 뿌린다. 그 의미는 이미 받은 성세를 기념하고 구세주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데 있다. 성수로 이 방은 그리스도의 방이 되고 구원의 은혜가 미치게 된다. 또 병자가 성유 바르는 행위(도유라고 함)에 앞서 세상살이에서 묻은 먼지와 더러움을 씻고 새 생활로 나아가려는 준비로 볼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참회하고 고백의 기도를 바치게 된다. 성서 낭독에서 그리스도의 현존(現存)을 확인하며 말씀의 힘으로 성사의 구원 은혜를 받도록 준비 한다.

 

 

성유 축성과 도유

 

병자성사 때 사용하는 성유(聖油)는 주로 올리브 기름이고 경우에 따라 다른 식물에서 짜낸 기름을 사용할 수 있다. 병자성사용 기름은 주교가 성주간 목요일에 축성한다. 그러나 만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아무 신부라도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수난 성지 주일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온 유다인들은 올리브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메시아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였다. 이 나무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수난과 죽음의 번민에 싸여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소서”(마르 14,36 참조) 하고 기도하시던 게쎄마니 동산의 올리브이다. 이 나무는 예수 수난과 죽음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올리브 나무는 수난하시고 개선하시어 다가오시는 주님인 사람의 아들이요 하느님 아들을 상징한다. 기름으로 남포의 불이 켜지고 상처를 치료하며 음식의 재료요 구원의 성유가 된다. 성 베르나르도의 말씀처럼 “빛이요, 음식이며 약”인 이 올리브는 빛으로 오신 분, 음식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분, 병과 죽음을 없애주시는 분인 예수를 상징한다. 이 기름의 축성은 글자 그대로 거룩하게 하는 것, 세속적인 용도를 떠나서 거룩함의 세계에 봉헌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기름이 이제 병자들에게 그분의 창조 능력과 지혜를 채우는 작업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물론 축성은 기도로써만 가능하다. 축성된 기름은 하느님 자비의 상징이다.

 

사제의 기름 바르는 행위는 마술사나 능력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취하셨듯이 하느님의 상징을 적용하는 것이다. 기름 바름은 일종의 애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는 행위이다. 결점을 없이하고 약한 마음을 달래준다. 그래서 기름을 바르며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신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

 

왜 이마와 두 손에 바르는가?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 생각하는 자, 계획을 세우는 자, 즉 머리와 두뇌를 사용하는 자이기에 그 중심부인 이마가 선택되었다. 두 손은 일하고 만들고 활동하는 인간 즉 행동과 작업의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다. 도유는 주님께서 환자를 도우려고 들어오는 문인 셈이다. 성유는 바로 예수님 수난과 성신 강림의 결과를 보여주고 일깨운다. 이런 결과에서 병자성사는 죄를 사해준다. 물론 의식이 있으면 고백성사로, 의식이 없으면 내적인 회개가 따라야 한다. 교회는 공동체 안에 이룩되는 하느님 사랑과 구원을 보장한다. 세례의 은총을 다시 받는 것이다. 죄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치유와 구원을 받는다.

 

 

노자성체

 

여행에 드는 돈을 노자라 하는데, 사람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에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능력과 보증을 위하여 성체를 받아 모신다. 이것을 노자성체라고 하며 마지막 여행을 위하여 받는 영신적 음식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노자로써 힘을 얻어 부활을 보증받는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요한 6,54)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노자성체는 될 수 있으면 미사 중에 받도록 하고 양형 영성체가 더욱 바람직스럽다. 세례받은 신자가 노자성체를 영하는 것은 한 의무요 권리이다. 사제들은 죽을 위험에 있는 환자들을 노자성체로 도와준다. 따라서 가족들은 본당신부에게 상황을 알리고 병자의 방을 정돈하여 성체 놓을 상을 준비하고 깨끗한 보를 덮어둔다. 성수와 뿌릴 채, 촛불도 준비한다.

 

 

장례 예절

 

옛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은 고대 이교도들의 관습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로마 시대의 초상집은 음식 차림이 중요한 부분이었고 교회 예절에도 도입되었다. 특정한 날 즉 죽은 지 3일, 30일, 주년마다 가족들이 묘지 또는 관리소에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음식상을 차렸다. 2세기부터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음식을 성찬 예식으로 변화시켰다. 여기서 죽은 이들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통곡하는 것이 아니고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차 있다. 이 표시로 이교도들이 검은 상복을 입을 때, 신자들은 흰옷을 입었다. 비탄에 찬 여인의 곡성 대신에 신자들은 시편과 찬미가를, 특히 부활절에는 알렐루야를 노래하였다.

 

중세기의 장례 예식은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어둡게 하였다. 즉 예수님 앞에 불려나가 심판받는 시기를 ‘분노의 날’이라 하여 하느님께서 내릴 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법의 규정에 의거하여 국가 당국자들에 부여된 영예 이외에는 의식에 있어서나 외적 치례에 있어서 어떤 개인이나 계급에 특별 대우를 해서는 안된다”(전례헌장 32항)고 못박고 예수 부활의 신비에 더 큰 희망을 두도록 하였다. “장례 의식은 크리스찬 죽음의 빠스카적 성격을 더욱 명백히 표시할 것이며 각 지방의 환경과 전통에도 밀접히 상응시켜야 한다”(상동 81항).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에로 옮아가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육신 부활을 기다리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빠스카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를 바침으로 산 이와 죽은 이의 상통(相通)을 명백히 드러낸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미사 없이 성당에서 장례식을 거행할 경우에, 미사는 다른 날 드리더라도 말씀의 전례와 고별식(사도예절)은 의무적으로 행해야 한다.

 

고별식은 마지막 인사이다. 시신을 발인하기 전에. 혹은 매장하기 전에 신자 단체가 마지막으로 가는 형제에게 고별 인사를 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고별식은 장례식이 있을 때만 할 수 있고, 시신 없이는 거행하지 못한다. 죽음으로 이별하지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잠시 헤어질 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성수를 뿌리고, 향을 드리고 송별가를 부른다. 인간적으로 보아 고별식은 장례식의 절정을 이룬다 하겠다.

 

[경향잡지, 1988년 11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 신부(대전 선화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