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해성사] 고해성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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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 작성일2010-08-13 | |||
고해성사
가톨릭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안되는 예비자입니다. 다른 종교나 개신교에서 볼 수 없는 가톨릭 교회의 특이한 제도 가운데 하나가 고해성사인 것 같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며, 따라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직접 죄의 용서를 청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왜 가톨릭에서는 사제에게 죄를 고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일부에서는 고해성사라 말하고 어떤 이는 고백성사라 말하는데 어느 말이 옳은지도 알고 싶습니다.
타종교 사람들이나 개신교 형제들의 눈에 가장 가톨릭적인 특성으로 보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해성사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남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고해성사가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고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제 역시 사람인데 그에게 자신의 은밀한 죄를 고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죄
우리는 친한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이 말로써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열려 있고, 서로를 믿는 그러한 사이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용서를 청하지 않을 때 나는 갑자기 그 친구가 멀리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때 그 친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은 것이 "우리" 관계를 "나와 그 사람" 관계로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를 갈라놓는 죄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뜻에 맞갖은 생활을 할 때 당신이 우리 아버지가 되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갖은 생활이란 당신 계명에 따라 사는 것으로서, 그 주요 골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바로 이러한 계명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죄로 인하여 사람 사이만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의 관계 역시 부수어집니다.
화해를 제안하시는 하느님
한번 갈라진 관계는 저절로 복구되지 않습니다. 내게 잘못을 저지른 친구가 나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청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온전히 용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설사 그 친구가 내게 사과한다 하더라도 내게 그를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화해가 성립되고 "우리"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다행히 하느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우리 인간의 약점을 잘 아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께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호소하십니다. 우리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당신 집에 받아 주시겠다는 것이 그분의 뜻임을 예수님은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루가 15,11-32)에서 밝혀 주고 계십니다.
화해의 직무를 맡은 교회
예수님은 죄로 인해서 생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러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십자가 제사로 이러한 당신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명이 이 세상에서 계속되도록 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뽑으시고 그들에게 이러한 당신의 "화해의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사제들을 뽑아 그들이 예수님의 "화해의 사제직"을 이어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제에게 죄를 고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죄를 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통해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죄를 고하는 것입니다.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죄로 인해 깨어진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표시입니다. 다시 말해 죄 고백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하느님과 이웃(교회)과의 화해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죄의 고백만을 강조하는 고백성사라는 말 대신 죄의 고백과 화해를 동시에 드러내는 고해성사(告解聖事)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 고해성사의 본뜻이 화해에 있는만큼 교회는 "화해성사"라는 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찬미의 성사인 고해성사
내가 사제 앞에 죄를 고한다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겸손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하고 그분의 자비에 나를 맡긴다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하느님이야말로 바로 나를 구원하시는 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죄를 고백함은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를 칭송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바로 이때문에 고해성사를 찬미의 성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 앞에서의 고해성사
죄를 지을 때 하느님과 이웃 모두와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하느님과 이웃 모두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가 죄를 사제 앞에 고하고 화해를 이룰 때 하느님뿐만 아니라 내 이웃인 교회와의 화해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한다는 명목으로 성사를 부인한다면, 자칫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죄를 심리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그칠 수도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