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체성사] 성체성사의 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 자세 | |||
---|---|---|---|---|
이전글 | [성체성사]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 |||
다음글 | [성체성사]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적 현존(Q&A) | |||
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 작성일2005-04-13 | |||
성체성사의 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 자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4월 17일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공표한 뒤, 지난해 10월 7일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에서 작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제48차 세계성체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총회 때까지를 성체성사의 해로 선포하였다. 교황은 이 교서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대희년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교회 임무의 핵심으로 삼았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제1장 참조). 또한 이 교서에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이 놀라운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자극하는 중요한 사목적 지침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초세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미사와 성체에 대한 신심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성체성사의 해를 맞이해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성체 신심을 함양하기 위한 몇 가지 행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초세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의 미사 집전과 성체께 대한 신심
교회 역사 안에서 볼 수 있듯이, 초세기에는 한 주일에 한 번 주일에만 거행하는 만찬 미사가 전부였다. 그것도 박해를 피하여 개인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성체를 개인적으로 집에 가지고 가 예배하거나 감옥에 갇힌 신자에게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4세기 초까지는 개인 가정집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때까지 아직 신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며, 공적으로 집회 장소를 갖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사도 2,24; 1고린 10,16 참조).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에 따르면, “주교의 주재(主宰), 주교를 둘러싼 사제단과 부제들의 참가, 더욱이 모든 신자의 참여로 행하여지는 주님의 만찬 제사야말로 교회 일치의 원천”이라면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고 주교와 사제에게 복종하여 하나의 빵을 나누어라. 그 빵은 죽음을 막는 불사의 영약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준다.”(「주의 만찬」, 87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강생 뒤 100년부터 130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전해지는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디다케」(Didache)에서는 성찬례에 대해서 “말라기 예언이 이 성찬례에서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성체야말로 온 세상에서 주님께 봉헌되는 가장 깨끗한 재물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세기 중엽에 쓰인 유스티노의 「호교론」(Apologia)에서는 성찬론에 대하여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통 빵과 보통 음료로서 먹고 마시는 일은 없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살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취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로 성체가 된 이 양식이 강생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다.” 유스티노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말을 포함하는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면 그 빵과 포도주는 이미 보통의 빵과 포도주가 아니고,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한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도들로부터 배운 신앙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세기에는 만찬 예식 거행과 참여에 역점을 두었고, 2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다.
4세기에 이르러 강생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 자유에 대한 칙서와 313년 주님의 날 공휴일 선포, 이어서 가톨릭 교회의 국교 선포 등으로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지하 교회의 상황에서 지상에 성당을 건축하게 되고, 신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자생활에 일대 전환기가 마련되었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뒤, 유럽의 모든 나라가 주일미사 참례의 의무를 법률로 선포함에 따라 누구나 주일미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이 점점 약해져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수가 감소하고, 그 결과 성체께 대한 신심도 약해져 1년에 겨우 2-3회 영성체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임종 때에 내세로의 “여로의 양식”으로 노자 성체를 영하는 신심은 굳게 지켜졌다.
12세기에 들어와서 성체 교의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곧 이 시대의 성체 교의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의 실체 변화(實體變化, Transsubstantiatio)였다. 실체 변화란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고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이 같은 현존을 신앙의 교의로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이 한층 더 깊어졌고, 이 신심 행위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의 축성이 행하여진 뒤, 주님의 몸인 빵과 주님의 피를 담은 성작을 높이 들어 신자들에게 보여줄 때, 신자들이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께 몸을 굽혀 경배하는 것이다.
또한 미사가 끝난 다음에도 남은 성체께 대하여 믿음과 존경의 예를 표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노자 성체를 위해서만 성체를 보존하였고, 그 보존된 성체께 대하여 특별한 공경을 표하거나 성체 앞에서 경배를 표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거쳐 성체를 보존하는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장식된 감실이 등장했다. 또한 신자들이 미사 이외의 시간에도 성체를 현시하고자 아름다운 성체 현시대(오늘날의 성광)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성체를 넣어 높이 현시하여 찬미와 흠숭의 예를 표하였으며, 성광을 높이 들어 신자들에게 강복하는 예식이 생겼다.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체 대축일을 제정하고 이 축일을 모든 교회에서 지키도록 하였다. 이 축일을 제정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로마 북쪽 약 100km 부근의 “볼세나”라는 조그만 동네에 있는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있었던 성체와 성혈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성체 거동을 하는 전례가 등장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회 역사상 성체성사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성사와, 교회의 많은 규율에 대해서 혁신을 가져온 공의회이다. 공의회에서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예배와 그 방법, 성체 행렬, 보존에 대해서 새로운 규정을 정하였다(교령 제5장). 7장에서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영하도록, 곧 대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받고 영하도록 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체께 대한 새로운 교의를 다루지는 않았다. 다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 신앙의 신비에 마치 국외자나 말 없는 구경꾼처럼 끼여있지 않고,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이 신비를 잘 이해하고 거룩한 행위에 의식적으로 경건하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일 것”(48항)을 당부하고 있다.
2. 성체성사의 해에 무엇을 할 것인가?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다음 몇 가지 행사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신앙생활을 활성화하고자 성체께 대한 신심을 깊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사실 믿음의 은혜, 구원의 은총, 성체 신심의 원천은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고 새롭게 하는 미사의 제사에서 온다. 미사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최고의 영광과 흠숭, 감사를 드리고,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미사에서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한 모든 은총과 힘을 받는다. 그러므로 다음 몇 가지를 제의하고자 한다.
첫째, 본당에서 구역별로 나누어 각 구역의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한 달 동안 미사 참례를 하고 영성체를 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미사야말로 무한한 은총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성체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히 죄인들의 배은망덕과 성체를 모독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배상 영성체를 함으로써 죄인들 때문에 고통받으시는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그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로 15분이나 30분씩 성체조배를 한다. 많은 본당에서 성체조배실을 따로 만들어놓고 성체조배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이 기회에 더 많은 신자들이 여기에 동참하도록 한다. 우리 믿음의 생활화는 성체를 영혼의 양식으로 삼을 때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성인성녀들이 성체께 대한 깊은 신심을 가졌음을 그들의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성인들 가운데 성 토마스 데 아퀴노 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서방교회에서 첫째가는 대학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볼세나”의 기적이 있은 뒤, 성체 축일을 제정하면서 토마스 데 아퀴노와 보나벤투라에게 성체께 대한 찬미가를 지어오라고 하였다. 얼마 뒤 두 학자는 각각 성체 찬미가를 지어 교황 앞에 왔다. 먼저 토마스 데 아퀴노가 자신이 지은 성체 찬미가를 읽었다. 토마스의 찬미가를 듣고 있던 보나벤투라는 자신이 지은 찬미가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여 교황 앞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자신의 찬미가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를 기도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 이 찬미가는 우리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 신비함을 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찬미가이다.
다음으로 성체께 대한 신심이 깊은 성인은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이다. 그는 젊어서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지만, 40세에 이르러 사제가 되었고, 뒤에 주교가 되고, 남녀 구속주회를 창설하였다. 그가 1745년에 쓴 『성체 방문』이라는 책은 그의 생전에 22판을 인쇄하였고, 1960년까지 여러 나라에서 무려 2009판이나 인쇄되었다. 알폰소 성인은 성체조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영성체 다음으로 하느님께 맞갖고 마음에 드는 기도는, 우리 제단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방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보내는 15분으로 하루 동안 하는 다른 모든 영적 실천 행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음을 알아두시오.” 하고 말하였다. 은퇴한 뒤 말년에 성인은 성체 앞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성인의 건강을 염려한 장상이 성인에게 성체조배 시간을 제한하자 슬피 울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성체께 대한 신심이 깊었다.
또한 본당에서 한 달에 한 번 성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성시간 동안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최고의 흠숭과 영광과 찬미를 드리며, 또한 죄인들이 성체께 끼치는 독성의 죄를 배상하고, 그들의 죄를 대신 보속함으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본당에서 40시간 계속해서 성체조배를 하는 신심도 가져 볼 만하다. 이 같은 신심은 본당에서도 가능하지만 수도회에서 더 많이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미사와 영성체, 성체조배, 성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더 많은 흠숭과 찬미를 드리고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체께 대한 신심을 돈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교구 차원에서 적어도 한 번 성체대회를 가져 신자들이 성체께 대한 공경과 신심을 갖도록 도와주고, 외적으로 성체께 대한 신심을 표현함으로써 성체께 더 많은 영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교구장 권한으로 한 달 동안 미사 영성체하는 모든 신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일로 생각된다.
끝으로 전국 차원에서 성체대회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참석 아래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인간은 내적으로, 개인적으로만이 아니고 외적으로, 또한 공동으로 기쁨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체께 대한 신심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외적으로 성대하게 표함으로써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더 많은 흠숭과 영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성체께 대한 우리 각자의 신심도 두터워지는 이중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맺는 말
오늘날 제물과 성사로서의 성체가 경시되고 평가 절하되며 잘못 해석되어 거룩한 성체가 상징적인 존재로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인 빵과 포도주의 실체 변화(實體變化)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고,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 뒤에 성체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신성과 인성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을 부정하거나 그리스도의 단순한 상징적 또는 동적인 현존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를 맞이해서 성체께 대한 신심의 앙양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제로, 실체적으로 계심을 믿는 참된 신앙을 다시 한번 고백해야 할 것이다.
[사목, 2005년 2월호, 유봉준(서울대교구 은퇴 사제 · 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