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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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1일 금요일

연중 제6주간 금요일    † 성 베드로 다미아니 주교 학자   

[(녹) 연중 제6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하느님, 날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알렐루야.
찬미가
I. 독서기도를 밤이나 새벽에 드리는 경우 :

새벽닭 울음소리 어둠헤치고
한밤의 두려움을 없애버리니
착하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간절한 우리서원 바치나이다

만상이 침묵속에 잠겨버리어
죽음의 종말모습 보여주어도
주님은 사람들을 수호하시려
빛으로 임하시어 깨어계시네

예수여 우리모두 간구하오니
죄악의 깊은잠을 깨워주시고
한밤의 옥중에서 풀어주시며
생활의 동반자로 빛을주소서

성부와 성자성령 삼위일체여
그이름 무엇보다 감미로우며
우리게 생명과빛 평화주시니
언제나 크신영광 받으옵소서. 아멘.

II. 독서기도를 낮에 드리는 경우 :

만물의 창조주여 찾아오시어
성부의 밝은영광 드러내소서
행여나 크신은총 거두시려나
이마음 두려움에 떨리나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채워져
마음에 하느님을 깊이모시고
악마가 우리믿음 앗으려해도
속임수 당하는일 없게하소서

현세의 생활양식 따라가면서
세속의 모든활동 하고있어도
온갖죄 조심하여 피해가면서
당신의 모든계명 지키리이다

사랑의 임금이신 독생성자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드리세
위로자 성령께도 언제나항상
세세에 무궁토록 영광드리세. 아멘.
시편기도
후렴1주여,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

2 주여 성내심으로 나를 꾸짖지 마옵시고 *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3 당신의 화살이 내게 박혀 있삽고 *
당신의 손이 짓누르고 계시기에,

4 내 살은 당신 진노 앞에 성한 데 없고 *
내 뼈는 내 죄로 하여 온전한 데가 전혀 없나이다.

5 진정 내 잘못은 내 머리 위 훨씬 넘어 있어 *
무거운 짐처럼 모질게 억누르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1주여,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후렴2주여, 내 모든 소원이 당신 앞에 있나이다.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I

6 상처는 썩어서 악취를 뿜으오니 *
내 미련한 탓이오이다.

7 나는 축 늘어져 허리가 굽은 채로 *
진종일 슬픔 속에 지내나이다.

8 허리는 열기에 가득 차 있사오며 *
살은 성한 데가 도무지 없나이다.

9 나는 까라지고 아주 으스러지고 *
애끓는 마음에서 소리는 터져 나오나이다.

10 주여 내 모든 절원이 당신 앞에 있사오며 *
나의 비탄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11 심장은 뛰고 기운은 없어지고 *
이 몸의 안총마저 흐려져 있나이다.

12 벗들과 동무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
근친조차 먼 발치에 서 있나이다.

13 내 목숨을 노리는 자 올무를 놓고 +
나를 해치려는 자 욕을 퍼부으며 *
언제나 간계를 꾸미고 있삽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2주여, 내 모든 소원이 당신 앞에 있나이다.
후렴3나는 내 잘못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내 구원이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II

14 귀머거리처럼 나는 듣지 못하오며 *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하나이다.

15 듣지를 못하는 사람처럼 *
입으로 대꾸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되어 버렸나이다.

16 주님 당신만을 믿사오니 *
내 주 하느님이여 당신은 들어주시리이다.

17 나의 말씀은 +
“저들이 나를 고소히 여기지 말고 *
내 다리가 휘청거려도 위세 부리지 말라는 것이오이다.”

18 사실 나는 다 넘어져 가고 *
고통은 줄곧 내 앞에 있나이다.

19 나는 내 잘못을 고백하고 *
죄 지은 탓으로 마음이 괴롭사오나,

20 까닭 없이 내게 맞서는 자들은 기세가 등등하며 *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은 수효가 많사오며,

21 선에 대한 갚음을 악으로 하는 그들은 *
선을 좇는 이 몸을 들볶나이다.

22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
내 주여 이 몸을 멀리하지 마옵소서.

23 주여 내 구원이시여 *
어서 나를 도와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나는 내 잘못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내 구원이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당신의 구원과 정의의 결단을 기다리다가,
이 내 눈이 지치나이다.
제1독서
잠언에 의한 독서 15,8-9. 16-17. 25-26. 29. 33; 16,1-9; 17,5
하느님 면전에 있는 사람
15,8 주께선 악한 사람의 제물을 역겨워 하시고
바른 사람의 기도는 반가워 하신다.
9 나쁜 일 하면 주님의 미움을 사지만
올바로 살려고 애쓰면 사랑을 받는다.
16 재산을 쌓아 놓고 다투며 사는 것보다
가난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낫다.
17 서로 미워하며 살진 쇠고기를 먹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는 것이 낫다.
25 주께서 거만한 사람의 집은 헐어 버리시고
과부의 밭 경계선은 지켜 주신다.
26 주께서 악한 사람의 음모는 미워하시고
결백한 사람의 말은 기뻐하신다.
29 주께서는 나쁜 사람을 멀리하시고
착한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33 교육을 받아 지혜를 얻으면 주님을 경외하게 된다.
겸손을 배우면 영광이 뒤따른다.
16,1 계획은 사람이 세우고 결정은 주께서 하신다.
2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주께서는 속 생각을 헤아리신다.
3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4 주께서는 모든 것을 각각 쓰임에 맞게 만드셨으니
불의한 사람은 재앙이 내리는 날에
재앙받을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5 주께서 마음이 거만한 자를 미워하시니,
그런 자가 어찌 벌을 받지 않으랴.
6 하느님을 참마음으로 사랑하면 죄를 용서 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면한다.
7 사람이 주님 마음에 들게 살면
원수라도 그와 화목하게 해주신다.
8 정직하게 살아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재산을 쌓는 것보다 낫다.
9 사람은 속으로 제 할 일을 계획해도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17,5 가난한 사람을 조롱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다.
남 망하는 것을 좋아하면 벌을 받고야 만다.
응송신명 6,12b. 13a; 잠언 15,33
너희는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너희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 너희 주 하느님을 경외하여 그분만을 섬기어라.
지혜를 경외하면 지혜를 얻게 되고, 겸손을 배우면 영광이 뒤따르는도다.
너희.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1서 주해’에서 (Tract. 4,6: PL 35,2008-2009)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말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마음의 숙고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을 실재와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요한이 지닌 능력과 비교도 안 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음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 임재의 은총으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애타게 갈망할 뿐입니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전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망한다면 장차 보게 될 것에 이를 때 그것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어떤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받아 넣을 것이 너무 많다면 그 용기가 자루이건 부대이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넣을 것이 너무나 많고 담아 넣을 용기는 작을 때 그 용기를 늘려서 용량을 늘립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을 늦추심으로써 그 갈망을 더 크게 하시고 갈망을 더 크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넓히시고 또 이렇게 넓히심으로써 영혼의 용량을 늘리십니다.

형제들이여, 언제나 갈망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언제나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는 장차 올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활짝 펼쳤습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희망을 아직 이루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만 나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바오로는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갈망하는 것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 - 이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어 버리면 끊어 버리는 그만큼 거룩한 갈망은 우리 마음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미 말했듯이 비어 있는 것만 채울 수 있습니다. 선으로 채우고자 한다면 먼저 악을 쏟아 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꿀로 채우고 싶어하신다고 합시다. 만일 우리 마음이 식초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어디에다 꿀을 넣겠습니까? 먼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비워야 합니다. 그릇도 씻어야 합니다. 받아 넣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부지런히 거듭거듭 속을 닦아 내야 합니다. 그 안에다 담아 넣을 것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꿀도, 황금도, 포도주도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이름붙이고 싶다면 “하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 마디로 된 이 한 단어가 우리가 기대하는 전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실재보다 부족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우리를 채우실 수 있도록 그분께로 우리 자신을 펼칩시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분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응송시편 36(37),4-5a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네 마음이.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친히 말씀하신 대로 바르고 솔직한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는 천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내리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 다음의 환호를 덧붙인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