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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묘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목이 없어 무두묘인가?
지번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987(사봉 공소) 
도로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동부로1751번길 46-6
전화번호 (055)761-5453
팩스번호 (055)761-5456
홈페이지 http://mun.cathms.kr
전자메일 ms1009@cathms.or.kr
관련기관 문산 성당    
관련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길67번길 9-4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순교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152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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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7 조회수308 추천수0

순교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152주년

 

 

지난 1월 25일은 순교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순교 152주년 기념일이었다. 순교자는 1822년 진주 사봉에서 태어나고, 1867년 진주 감옥에서 태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자는 앞서 영세한 부인 칠원 윤씨의 권유로 교리를 배워 1863년 41세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3년 동안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수계 생활을 열심히 하던 중 병인박해 때 체포되었다. 순교자는 회유당하였지만, 신앙을 지키겠다는 꿋꿋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진주 감옥으로 압송되고 25여 일 옥살이와 모진 매를 맞았고 가산은 모두 적몰되었다. 순교자의 부인은 옥바라지를 하였는데,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 먹였을 뿐만 아니라, 순교의 길을 지지하였다. 순교자가 모진 매를 맞고 그다음 날 옥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그때가 1867년 1월 25일 그의 나이 45세였다.

 

순교자의 죽음 후, 부인 윤씨는 아들 도순(道舜)을 업고 친정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만, 그 후의 삶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순교자의 묘는 진주 사봉 고향 땅에 묻혔다. 일명 무두묘(無頭墓)라 불린다. 머리 없이 몸만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문산성당 신자들은 1948년 3월 무두묘를 찾아 확인하였고(무두묘의 확인 작업이 1947년 9월이라는 증언도 있다), 그 후 묘소를 단장하였다. 필자는 “무두묘”라는 용어 사용을 인정해 달라고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에 요청하였는데, 수락되어 그 후 교회 용어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무두묘가 된 이유로, 필자는 병인년 당시 진주 원님이 이 사건을 중요시하여 임금에게 보여줄 증거를 남기기 위하여 순교자의 머리를 보존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순교자는 고려의 충신 대사헌(大司憲) 정온(鄭溫)의 18대 후손으로, 정온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역성혁명(易姓革命) 이후, 두문동 72인과 함께 지리산에 은거하다, 진주 사봉으로 옮겨 살았다.

 

[2019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마산 4면, 정영규 마르코(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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