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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 제물진두 순교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거점이자 인천 지역 최대 순교터
지번주소 인천시 중구 항동1가 1-13 
도로주소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40
전화번호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jemuljin
관련기관 해안 성당    (032)764-4191
관련주소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로59번길 4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제물진두 순교자와 박순집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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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6 조회수170 추천수0

[빛과 소금] 제물진두 순교자와 박순집 일가

 

 

인천 차이나타운에 제물진두 순교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관광지 사이에서 잠시나마 신앙을 돌아보고 묵상할 수 있는 성지이다. 김대건 신부(당시 부제)가 사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출발하던 곳이며, 수녀들이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10명의 신앙인이 순교했다.

 

 

1. 제물진두 순교자

 

제물진두에서 순교한 10명의 신앙인은 1868년에 박순집의 이모부 손 베드로, 그의 아내인 김씨, 이 부부의 사위 백치문 사도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가 있고, 1871년에 이승훈의 증손 이연구(李蓮龜)와 이균구(李筠龜) 형제, 이승훈의 손자며느리인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손자 이(손)명현, 백용석, 김아지 등이 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선참후계(先斬後啓, 참형을 행한 후에 보고함)로 인하여 자세히 남아 있지 않다. 이들이 제물진두에서 처형된 이유는 이곳에 이들의 연고지가 있었다기보다 조선을 침공한 서양인들과 관련된 장소라는 점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나루터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1868년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박순집 일가의 사람들이다. 박순집의 이모부인 손 베드로는 형장으로 끌려가며 아내에게 ‘이 때를 당하였으니, 정신을 잃지 말라.’고 하며 일깨우자, 아내도 ‘영감도 정신을 잃지 말라.’며 서로를 격려하며 순교를 받아들였다.

 

손 베드로 부부와 함께 순교한 사위 백치문 사도요한은 손 베드로 부부의 딸과 혼인하여 살다가 부인을 잃고 재혼하였지만 손 베드로 부부의 근처에 살면서 재혼한 부인에게 예비자 교육을 시키는 등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세 사람은 함께 도끼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1871년 순교한 이연구와 이균구, 그리고 이재겸의 처 정씨와 정씨의 손자 이명현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 베드로 집안의 사람들이다. 이승훈 집안이 박해 속에서 신앙의 수용과 배교의 혼재를 겪으면서도 신앙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박순집 일가

 

손 베드로 부부와 백치문 사도요한을 비롯하여 박순집 일가에는 20여 명의 많은 순교자가 있었다. 이것은 박순집 집안에 천주교 신앙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으며 박해 시대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봉사하며 살아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순집의 아버지 박 바오로는 여러 신앙인들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하였다. 당시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행위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많은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박 바오로가 순교하자 박순집 베드로도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 일을 계속해서 실천하였다. 박해가 끝나고 박순집은 순교자의 행적을 증언하였고 이를 모아 기록한 것이 『박순집 증언록』이다. 또한 많은 순교자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박순집은 60세에 인천 제물포로 이주하여 제물포 본당(현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회장직을 맡아 봉사하였다. 신자들이 올바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사생활과 교리 등을 가르쳤고, 죽음을 앞둔 신자들을 사제에게 데려가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선종한 이들을 교회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장례기간 내내 함께 하며 도와주었다.

 

또한 박순집 집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자가 탄생했다. 박순집의 딸 박황월 글라라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도자로 살아갔다.

 

[2021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인천주보 3면, 유동식 마리오 신부(청소년사목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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