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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틸리아(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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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오틸리아 (Othilia)
축일 12월 1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알자스(Alsace)
활동연도 660-720년
같은이름 아딜리아, 오딜, 오딜리아, 오띨리아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성녀 오딜리아의 전설 어떻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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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4 조회수626 추천수0

성녀 오딜리아의 전설 어떻게 읽을까?

 

 

알자스 오베르네 생피에르에폴 성당의 팀파늄. 성당 동쪽 정문 팀파늄에 알자스 수호성인 오딜리아가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 있는 모습을 부조로 만들었다. 그 아래 성녀의 일대기도 볼 수 있다.

 

 

성녀 오딜리아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알자스 지역 수호성인이자, 왜관 수도원이 속한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의 수호성인입니다. 작년 12월 13일이 선종 1300주년이었지만, 코로나19로 조촐히 지냈습니다. 근데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있는 에레징과 400여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지역의 성녀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건 에레징에 선교 베네딕도회가 생기기 전부터 오딜리아 경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곳곳에 오딜리아 성녀 순례지가 많은데 에레징의 오딜리아 경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365년부터 순례자가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15세기 말에는 에레징 언덕에 경당과 조그만 성이 세워졌고 그 자리에 수도원이 자리 잡은 겁니다. 지금 지명인 상트 오틸리엔도 이 경당에서 따왔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성녀의 전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녀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이 수도원에서 자랐는데, 세례를 받으면서 눈을 뜨게 됩니다. 그 뒤 수도공동체를 이끌며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며 삽니다. 여기서 세례로 눈을 뜨는 모티브가 선교 베네딕도회의 모토인 ‘눈먼 이들에게 빛을(Lumen Caecis)’이 된 겁니다. 하느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앙의 눈을 뜨게 하자는 사명으로 이어진 거죠.

 

우리가 아는 성녀 이야기는 10세기 익명의 저자가 쓴 「오딜리아의 가장 오래된 생애(vita Odiliac antiquissimi」에 근거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딜리아는 프랑크 왕국의 킬데리히 2세 시기, 그러니까 673~675년 무렵 알자스 오베르네(독일식으로 호엔부르크)에서 아달리히 공작과 페르신다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이유만으로 공작은 딸을 죽이라고 합니다. 당시 통념대로 자기 죄 때문에 하느님의 벌을 받은 것이라며 수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려고 된 것”(요한 9,3)이라는 아내의 설득에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차선책으로 공작부인은 아기를 옛 시녀에게 보내 몰래 키우도록 합니다. 아이를 극진히 보살피는 유모의 모습에 이웃들이 대체 어느 가문의 아이인지 호기심을 갖자. 페르신다는 다시 아이를 멀리 떨어진 팔마라는 수도원에 맡깁니다.

 


-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오딜리아 경당. 옛날 엠밍 성의 경당이었다. 중세 후기부터 성녀 오딜리아의 순례지로 유명했다. 제대에 오딜리아 성상과 책, 잔, 눈 모습을 볼 수 있다(좌).

- 오딜리아가 자란 옛 보메-레-담므 수녀원. 400년 무렵 브장송의 주교가 세운 수녀원. 중세 부르고뉴 귀족의 여아들을 맡아 교육하던 곳이어서, 오딜리아도 이곳으로 보내진 것 같다. 현재 지역 문화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오딜리아가 12살이 되었을 때, 멀리 레겐스부르크의 에르하르트 주교가 찾아옵니다. 알자스로 가서 눈먼 아이에게 세례를 주고, 오딜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라는 계시를 받고 한걸음에 내달려온 것이었죠. 세례 중 성유를 바르는 순간 전설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인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딸이 살아있고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소식이 아버지의 귀에도 전해졌지만, 아버지는 그냥 모른 척하라고 주위에 엄명을 내립니다. 어린 여동생이 궁 밖에서 힘들게 지내는 걸 안타까워했던 오빠가 동생을 궁으로 부르는데, 아버지는 도리어 자기 명령을 어겼다며 펄펄 뛰며 아들을 때려죽여 버립니다. 오딜리아는 다시 아버지를 피해 몸은 숨기고, 아버지는 한탄 속에 남은 삶을 순례를 다니며 단식과 고행으로 속죄의 삶을 살게 됩니다만 쉽게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여기까지가 전설의 앞부분입니다만, 21세기 우리가 보기에는 낯설고 기이하기만 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놀라운 ‘이야기’가 뒤섞여 있고, 등장인물들도 모순덩어리입니다. 성녀의 아버지만 보더라도, 전설 속에 묘사된 그는 매사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던 경건한 사림이었습니다. 자신의 근거지를 찾으려고 할 때도 하느님의 뜻을 먼지 찾던 사람이었지만, 세속적으로 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냉혈한이 됩니다. 심지어 홧김에 아들을 죽이는 잔혹함도 보여줍니다. 이런 인물상에 계시와 기적이 더해지니 낯설고 황당하다는 첫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 성녀 오딜리아의 생애의 첫 부분. 성녀 오딜리아에 관한 기록 중 현존 가장 오래된 자료로 9세기말, 10세기 초 쓰인 필사본에 실려 있다.(Cod. Sang. 577,71 @ecodices) (좌)

- 레겐스부르크의 에르하르트 주교(?-715/717). 프랑스 남부 나르본 출신으로 680-690년 무렵 바이에른에 선교를 담당하며 레겐스부르크 교구 창설의 정지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전설이란 단어가 주는 오해도 있습니다. 전설에 해당하는 라틴어 ‘legenda’의 원래 뜻은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읽어야 할 것’, ‘읽을 만한 내용’으로 중세 문학에서는 종교적으로 본받을 인물, ‘성인’ 이야기를 다룬 한 장르였습니다. 그래서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의 전달보다 신앙의 진리를 알리는 게 목적이며, 성인에게 나타난 여러 사건, 특히 기적의 표징으로 주님의 구원사업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게 핵심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컨대 오딜리아의 아버지가 어느 시대 실존 인물인지보다 성녀의 삶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신앙적 의미를 읽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그지 올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에 그쳤을 뿐, 예수님의 정신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키거나 구원받을 수 없었던 거죠.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제안처럼, 성인의 전설을 우리 시대에 걸맞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오딜리아 성녀와 낯설지만 첫 만남이 ‘우리 내면의 눈을 뜨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차윤석 베네딕도 - 서울대교구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중세문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분도통사」를 비롯한 여러 번역을 했으며,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1-15권) 기획, 집필했다. 현재 <사회평론>에서 단행본 본부장을 맡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21년 봄(Vol. 53), 차윤석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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