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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다미아노(9.20)

남명혁 다미아노(9.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남명혁 다미아노 (南明赫 Damian)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회장,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2-1839년
같은이름 남 다미아노, 남다미아노, 다미아누스, 다미안, 다미앵, 데미안, 데미언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남명혁 다미아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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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굿뉴스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16 조회수697 추천수4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남명혁 다미아노 편

 

 

후대에 어떻게 알려지면 좋겠습니까

 

성인 남명혁 다미아노(南明赫, 1802~1839)는 성녀 이연희 마리아(李連熙, 1804~1839)의 남편으로, 축일은 9월 20일이다. 그는 1802년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여 젊은 시절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가 30세에 천주교 교리를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남명혁은 주문모 야고보(1752~1801)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입국한 중국인 신부인 유방제 파치피코(여항덕, 1795~1854) 신부에게 영세 입교한 후 외교인 지인들과 관계를 끊고 교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힘썼다.


앵베르(范世亨, 1797~1839) 주교에게 이광헌 아우구스티노(1787~1839)와 함께 회장으로 임명된 후로는 그의 집이 공소(公所)가 되었고, 선교사들의 임시 거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명혁은 냉담자와 외교인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병자들을 위로하거나 어린이들에게 대세(代洗)를 주는데 열심이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많은 천주교 신자가 남명혁의 집에 피신했는데 그중 어떤 사람이 “훗날 사람들이 그대를 무엇이라고 부르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내 유일한 바람은 언젠가 사람들이 남명혁 다미아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이 반포되다

남명혁은 1839년 부활 축일을 보낸 다음 주 4월 5일(음력 2월 22일) 앵베르 주교의 지시를 받고 신자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모아 성사를 받도록 하였다. 많은 신자가 모였고, 그중 한 예비자가 밀고(密告)하여 4월 7일 포졸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쳐 집에 보관 중이던 앵베르 주교의 제의(祭衣),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을 압수해 갔다. 그리고 남명혁과 그의 가족은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가족, 다른 교우 등 20명가량이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아내 이연희 마리아(1804~1839)가 자신을 무례하게 대하는 옥리(獄吏)들을 꾸짖는 소리가 남명혁이 있던 다른 옥사(獄舍)에도 들려왔다. 남명혁은 아내 이연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우리는 이곳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되어야 하겠소.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릴 고통을 받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소”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후로 이연희 마리아는 온갖 고통과 욕설을 신음 소리 하나 없이 견디어 냈다.

남명혁이 잡히고 11일 뒤인 4월 18일 조선 조정에서는 박해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을 반포하여 기해박해(己亥迫害)의 서막이 올랐다.


앵베르 주교와 한국 천주교회를 지키다

포도청에서는 서양 선교사들의 물건이 남명혁의 집에서 확인되었으므로 앵베르 주교의 거처를 알기 위해 그를 심문하였다. 포도대장이 앵베르 주교의 주교관을 가리키면서 “이 큰 모자와 제의는 누구의 것이요. 어디에서 온 것들이냐?”하고 물었다. 남명혁은 “우리 주문모 신부님께서 사용하시던 것이요. 중국에서 가져온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주문모 신부의 유품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처럼 속여서 앵베르 주교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또한, 여러 날 신문(訊問)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과 천주교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제가 믿는 천주교가 외국인들의 종교라고 하시지만, 천주교는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의 종교입 니다. 8년 전에 제가 알게 되어 실천하기 시작한 이 종교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천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 가운데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으므로, 누구의 이름이나 사는 곳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형조(刑曹)로 이송된 이후에도 포도청에서 받은 질문 또다시 받았다. 남명혁은 “고문 중에 저를 죽이시려면,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한가지 말밖에 하지 않을 터이니, 그것은 천주님을 믿는 사람이요. 천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죽을 것이며 다른 말을 하기를 기대하지 마시오”라고 대답하였다. 형조에서 남명혁은 세 차례에 걸쳐 정강이에 30대씩 매를 치는 신장(訊杖) 형벌에 처하였고, 이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남명혁은 사형이 집행되기 며칠 전 아내 이연희 마리아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 우리의 본향(本鄕)은 천국이니 주를 위해 죽어서 광명한 세상에서 영원히 만나기를 바란다”고 부탁한 뒤, 5월 24일 이광헌, 권득인 베드로, 박희순 루치아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남명혁은 순교한 지 86년 후인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식을 통해 복자(福者)위에 올랐다.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식을 통해 시성(諡聖) 되었다.

남명혁 다미아노는 한국 천주교회를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디며, 아내 성녀 이연희 마리아와 천국에서 영원히 만나기를 기약하였다. 천국에 먼저 간 남편 남명혁은 석 달 후 이어서 처형당한 아내 이연희를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을까. 꼭 석 달 남은 기해박해 180주년을 보내며 천주교 신앙과 한국 천주교회를 위해 순교한 성인 남명혁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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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선 (ss460815) 쪽지

    저는 영세를 받고 103위 한국성인 호칭기도를 꾸준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명순교자들의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걸핏하면 게으름이 도져서 신앙의 힘이 나태해 질때 저는 우리 한국 성인성녀들의 기록을 보면서 신앙을 다지곤 했습니다. 기해박해 180주년, 아득히 먼것 같아도 지금 수명이 길어져 백세시대라는 걸 따져 보면 사실 그리 먼 것도 아닌 것 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성경 공부도 하고 좋은 강론 말씀도 듣고, 좋은 책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그런데 과연 우리는 지금 박해가 온다면....과연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바깥에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신앙의중심이 흔들리곤 하는건 아닌지 잠깐 생각해 봅니다. 저는 많이 부족하지만 예쁘게 잘 사시는 분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늘 그렇듯 우리 선조들의 보살핌이라 여겨집니다. 잠깐 쉬고 있던 103위 호칭 기도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19/09/16  
  • 정우석 (woosuk.j) 쪽지

    103위 순교성인들 중 70위 순교성인들이 기해.병오 박해때 순교하신 분들이십니다. 기해박해 180주년을 보내고 있는 올해 기해 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잘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남명혁 다미아노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우리는 이곳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되어야 하겠소.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릴 고통을 받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소”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다짐합니다. 124위 복자들 중에서도 기해박해 순교자가 18위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17  
  • 정선영 (sunnyou8) 쪽지

    저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있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지난주 아이들에게 순교자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고통중에 하느님을 저버릴지라도 우리를 버리시는 분은 아니시지만 이다음에 천국에서 하느님 앞에서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아이들도 저마다 여기까지는 참겠다 아니 나는 끝까지 참고서 하느님 앞에 멋지게 서겠다 등등을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 성인의 말씀을 다시 들으니 이세상에서의 삶은 잠시이기에 천국 본향으로 나아가기위해 기꺼이 현세의 삶을 견뎌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019/09/18  
  • 김영종 (greymantle) 쪽지

    자신의 집을 주님께 봉헌하여 성소로 만드시고, 핍박받는 많은 형제 자매를 위하여 힘써주신 남명혁 다미아노를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죽음 그리고 멸시, 비신자들의 많은 핍박 속에서도 순교를 바랬던, 그 불꽃보다 따뜻했던 주님을 향한 사랑을 나는 본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하루 주신 굿뉴스에 감사하며, 남명혁 다미아노의 빛나는 일생을 그려봅니다.

    201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