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오늘날 헝가리의 서쪽 지역을 통치하던 게자(Geza) 대공과 남동쪽을 통치하던 족장 지울라(Gyula)의 딸인 아델라이데(Adelaide)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헝가리인들인 마자르족(Magyars)은 유목 민족으로 중부 유럽에서 약탈을 일삼다가 10세기 초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7세 황제에 의해 제압된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교황 베네딕토 6세(Benedictus VI)는 헝가리 지역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했고, 성 스테파노의 부모는 선교사들에게 세례를 받고 10살 정도 된 아들 바이크(Vaik)에게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도록 했다. 헝가리의 그리스도교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은 프라하(Prague)의 제2대 주교인 성 아달베르토(Adalbertus, 4월 23일)에 의해서였다. 성 아달베르토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헝가리의 게자 대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의 아들인 성 스테파노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견진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게자 대공이 다른 민족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고, 이를 위해 훗날 하인리히 2세 황제가 된 바이에른(Bayern) 공작의 누이동생 복녀 기셀라(Gisela, 5월 7일)와 성 스테파노가 995년에 결혼하도록 주선하였다. 성 스테파노는 997년 그의 아버지인 게자 대공이 사망하자 마자르족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성 아달베르토의 지도를 받으며 헝가리를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어갔다. 그는 우선 이교도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비잔틴 교회가 우세한 헝가리 남동쪽을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일련의 정책들을 슬기롭게 펼쳐나갔는데, 먼저 교황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신성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부터 헝가리의 독립된 국가로서의 주권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혈통 중심의 영주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 집권적 군주제를 정착하며 헝가리 고유의 문화와 풍속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성 스테파노는 가톨릭을 헝가리의 국교로 정하고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 가톨릭교회를 정착시키고자 했다. 993년에 프라하의 수도자들을 헝가리 사절로 임명해 헝가리 국법의 비준과 왕권 승인을 얻고자 로마로 파견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오토 3세 황제와 교황 실베스테르 2세(Silvester II)의 지지를 받은 성 스테파노는 1000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황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 사절의 집전으로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에스테르곰(Esztergom)에서 거행하였다. 이로써 성 스테파노는 헝가리 최초의 왕이 되었다. 성 스테파노 왕은 성 아달베르토 주교의 도움을 받으며 교계제도를 구성하고 많은 교구와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유럽 여러 지역에서 온 수도자들의 선교 활동을 지원하며 헝가리 국민을 그리스도교 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해 열성을 다하였다. 한편 이교도적 풍습에 대한 강경한 정책은 나중에 적지 않은 저항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성 스테파노는 헝가리라는 국가를 창설하고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든 최초의 헝가리 왕이었다. 그는 신심 깊고 올곧아 자신의 후계자로 여겨 왔던 아들 성 에메리코(Emericus, 11월 4일) 왕자가 사냥 도중 사고로 죽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친척 간의 암투와 음모로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게다가 말년에는 건강마저 악화하여 고통을 받다가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하였다. 성 스테파노는 선종 후에도 헝가리 국민으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의 무덤을 참배하러 많은 사람이 몰려왔고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1083년에 성 라디슬라오(Ladislaus, 6월 30일) 왕은 헝가리를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성 스테파노 왕과 성 에메리코 왕자 그리고 ‘헝가리의 사도’로 불리는 성 제라르도 사그레도(Gerardus Sagredo, 9월 24일) 주교의 시성을 추진해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로써 헝가리는 최초로 세 명의 성인을 모시게 되었고, 성 스테파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들 세 성인의 유해는 부다페스트(Budapest)의 성모 성당에 안치되어 장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았는데,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영토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686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Innocentius XI, 8월 12일)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부다(Buda)를 다시 탈환한 9월 2일을 성 스테파노의 축일을 선포하고 전 세계 교회에서 공경하도록 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일 목록에서 헝가리인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시킨 헝가리 최초의 왕인 성 스테파노가 거룩한 삶을 살다가 성모 마리아가 승천한 날 하늘로 돌아갔다고 전하며,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용맹한 그리스도교 군대가 부다의 견고한 요새를 재정복한 이 날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성 스테파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기 때문에 그동안 8월 20일에 기념해 오다가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9월 2일로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8월 16일에 기념하던 성 요아킴(Joachim)의 축일을 성녀 안나(Anna)와 함께 7월 26일에 기념하도록 옮기면서 성 스테파노의 축일을 8월 16일에 기념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헝가리에서는 1948년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성 스테파노 기념일을 9월 2일에서 8월 20일로 변경하고 종교적 의미 없이 ‘헌법의 날’로 기념하도록 했다. 그런데 헝가리의 그리스 정교회에서 2000년 8월 21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 스테파노 성당에서 성 스테파노를 그리스 정교회의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성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교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리된 1054년 이후 서방교회의 성인이 동방교회에서도 성인으로 공식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6일 목록에서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왕이 헝가리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성모님이 승천하신 날 선종할 때까지 백성과 신하들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다스렸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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