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녀 아가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Sicilia Is.)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Palermo)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스스로 동정을 지키겠다는 정결 서원을 하고 남자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선(善)’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Agathos)에서 유래한 이름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모에 반한 그 지방 집정관 퀸티아누스(Quintianus)가 그녀에게 청혼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는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일 때였다. 청혼을 거절당한 집정관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박해를 이용해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을 세웠다. 체포되어 집정관 앞으로 끌려온 성녀 아가타는 주님께 모두 맡기는 기도를 바치며 집정관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였다. 그러자 퀸티아누스는 그녀의 믿음과 의지를 꺾기 위해 그녀를 사창가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유혹도 그녀의 굳은 믿음과 몸을 해치지는 못했다. 성녀 아가타는 다시 퀸티아누스에게 불려가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감옥에 갇혔다. 온갖 고문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기쁨으로 참아내는데 격분한 집정관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성녀 아가타는 당당하게 “내 몸을 이렇게 고문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당신은 여인인 어머니의 젖을 빨지 않았던가요? 당신이 내 육체는 도려낼지라도 내 영혼을 도려낼 수 없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집정관은 그녀를 다시 감옥에 가두며 치료를 위한 어떤 약이나 음식도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성녀 아가타는 환시 중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를 보았고, 성 베드로는 천사와 함께 나타나 성녀 아가타의 상처를 기적적으로 치료해주었다. 그녀가 다 나은 것을 본 퀸티아누스는 결국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성녀 아가타는 “주님, 저의 창조주시여, 당신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저를 언제나 보호해 주셨나이다. 당신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 저를 택하시고 고통을 견딜 인내를 주셨습니다. 제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바친 뒤 숨을 거두었다. 성녀 아가타가 순교한 뒤에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에서 그녀를 성인으로 공경하는 관습이 확산하여 시칠리아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5세기와 6세기의 “예로니모 순교록”과 고대 “카르타고 순교록”은 2월 5일에 성녀 아가타가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590~604년 재위, 9월 3일)에 의해 로마 미사 경본 감사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유해 대부분은 카타니아에 있었는데, 1040년경 시칠리아에서 사라센인들을 몰아낸 그리스의 장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옮겨졌다가 1127년 다시 돌아왔다. 특별히 성녀 아가타는 출생지이자 순교지인 시칠리아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는데, 그녀를 매장하고 1년 후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산(Mount Etna) 인근 지역에서는 화산 폭발로 유황과 돌들이 분출했을 때 그녀의 무덤에서 나온 베일이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었다는 기적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 등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순교 과정에서 있었던 고문을 기억해 교회 미술에서 보통 고문 도구인 집게나 접시에 올린 자기 가슴을 들고 있거나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훗날 이것이 잘못 전해져 성녀 아가타가 빵이 담긴 접시를 봉헌하는 것으로 생각해 카타니아에서 성녀 아가타 축제를 거행하면서 ‘아가타 빵’을 만들어 축복하고 나눠 먹는 풍습이 생겼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2월 5일 목록에서 시칠리아섬 카타니아의 어린 소녀였던 동정 순교자 성녀 아가타가 박해 중에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고 굳건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언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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