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아벨롱(Andreas Abellon)은 프랑스의 생막시맹(Saint-Maximin)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막시맹은 그 지방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성모 마리아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 일행이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빠져나와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떠났다가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상륙하여 복음을 선포하였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생막시맹 마을에서 금욕생활을 하다가 삶을 마치고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안드레아 아벨롱의 전 생애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프랑스로 선교활동을 온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 신부의 감동적인 강론을 들었다.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 신부의 강론은 순결과 참회의 선택을 하려는 젊은 안드레아 아벨롱의 삶에 모범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고향에 있는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행복하고 거룩한 수련기를 마친 후 서원을 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몇 년 동안 설교자로서 그리고 영혼의 인도자로서 활동한 그는 그 동안 방치되어 있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곳은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였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나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줄 별다른 준비가 없었다. 안드레아 아벨롱의 시대에 생막시맹의 도미니코회 신부들은 순례자들에 대한 영적인 도움을 자신들의 선교사명으로 인식했으나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안드레아 아벨롱은 성지에 영속적인 기반이 필요함을 보고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계획에 여왕이 관심을 보여 재정적인 후원을 해줌으로써 그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왕립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는 신심이 뛰어났고 수도회의 규칙을 엄수하여 큰 성덕을 닦은 사람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리고 선교활동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지뿐 아니라 남부 프랑스의 수많은 도미니코회 성당을 장식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사망 후에 성지 성당에 묻혔고 곧이어 그의 무덤은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2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