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한 작은 어촌 마을인 캉칼(Cancale)에서 1792년 10월 25일 태어난 성녀 쟌 쥬강(Joanna Jugan, 또는 요안나 유간)은 어린 나이에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가 실종된 후 다른 세 명의 형제들과 함께 일찍 가난과 고된 노동을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한 저택의 부엌일을 돕는 하녀로 시작하여 생-세르방( Saint-Servan)의 로제 병원에서 간호사로, 가정부로 때로는 간병인으로 일을 하였다. 한 젊은 어부의 구혼을 받았을 때 그녀는 “하느님께서 저를 원하십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어떤 사업, 알려지지 않은 그 사업을 위해 저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하며 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그 후 그녀는 오직 하느님과 이웃, 특히 가장 불쌍하고 헐벗은 이들을 섬기고자 결심하였다. 그래서 25세에 탄복하올 어머니 제3회에 입회하였다. 1839년 겨울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된, 수족마저 못 쓰는 반신불수의 장님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 보살핀 것이 계기가 되어 1843년 그녀를 중심으로 세 명의 젊은 동반자와 합세하여 40여 명의 노인을 보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 젊은이는 수도회의 기틀이 잡혀가는 이 작은 모임의 원장으로 성녀 쟌 쥬강을 추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녀는 부당하게 원장 자리에서 밀려났지만, 오로지 침묵과 온순함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이 모든 일을 받아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그녀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고, 그녀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그녀가 수도회의 창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수녀가 거의 없었다. 1879년 8월 29일 그녀가 선종한 후 1902년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잊혔던 성녀 쟌 쥬강 십자가의 마리아 수녀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경로 수녀회)의 창립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1982년 10월 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2009년 10월 11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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