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네스 칼리비타(Joannes Calybita, 또는 요한 칼리비타)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스탄불[Istanbul])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살 때에 은둔생활을 위해 집을 나와 성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Alexander Akimetes, 2월 23일)가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 동쪽 기슭의 고몬(Gomon)에 세운 아코이메타이(Acoemetae)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24시간 교대로 전례를 거행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기 때문에 ‘잠들지 않는 이들’이란 뜻에서 아코이메타이 또는 아코이메토이(Akoimetoi)로 불렸다. 그는 그곳에서 6년 동안 엄격한 수도 생활을 했는데, 예전에 부모에게 받은 금으로 표지가 장식된 복음서를 가지고 있어서 ‘황금 복음서의 소유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초라한 걸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모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부모의 집 밖에 있는 작은 오두막(그리스어로 칼리베[Kalybe])에서 철저한 관상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이름 뒤에 ‘칼리비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부모에게 받은 ‘황금 복음서’를 돌려주며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고 한다. 뒤늦게 집 앞에 있던 거지가 자기들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달은 부모는 큰 충격과 함께 회개하고 그가 살다가 죽은 오두막 자리에 성당을 짓고 자기들의 집을 순례자를 위한 숙소로 바꿨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5일 목록에서 성 요한 칼리비타가 로마에서 한동안 부모 모르게 집 한구석에서 살았고, 나중에 테베레강(Tevere R.)에 있는 섬의 오두막에서 살다가 죽을 때에야 부모가 그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묻힌 무덤이 기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그곳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콘스탄티노플로 장소를 정정하고, 성 요한 칼리비타가 얼마간 아버지 집의 한적한 곳에서 살다가 ‘갈리베’라 불리는 오두막에서 전적인 관상 생활에 몰두했는데, 그가 죽은 뒤에야 부모가 그에게 준 황금 복음서 사본을 보고 그를 알아보았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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