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유 체칠리아(Caecilia)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스무 살 되던 해에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후처로 들어가면서 남편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깊은 신심을 보여주었다. 신유년 서울에서 큰 박해가 일어나서 남편이 옥에 갇혔을 때 그녀 역시 세 아이와 함께 붙잡혀 들어갔다가 다행히 풀려 나왔다. 그러나 가산은 모두 몰수되어 의지할 곳이 없었다. 어려운 처지에 살 길이 막연했던 유 체칠리아는 경기도 광주의 마재에 있는 시동생 정약용 요한의 집에 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믿지 않는 친척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무수한 고생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맏딸과 전처의 아들인 순교복자 정철상 카롤루스(Carolus)의 아내와 아들마저 죽자 자신이 낳은 정하상 바오로(Paulus)와 정정혜 엘리사벳(Elisabeth)만 남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유 체칠리아는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나는 천국에 방 여덟이 있는 집을 하나 지었는데 다섯은 차고 셋만 남았소. 그러니 생활이 어렵더라도 참아 받으시오. 그리고 꼭 우리를 만나러 오도록 하시오.” 하고 말했다. 과연 가족 여덟 식구 중에서 이미 다섯이 순교하거나 죽었으니 그 꿈은 꼭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꿈은 그녀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박아주어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한편 그녀의 아들인 성 정하상 바오로는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며 선교사들을 조선에 영입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어머니 유 체칠리아에게는 이것이 큰 시련이었는데, 아들이 북경으로 떠날 때마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을 기도로써 참아 이겨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니 어떤 때는 그녀가 먹을 것도 먹지 않고 내어주었다고 한다. 또 나이가 너무 많아 가사를 돌볼 수 없었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며 지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한창일 때 그녀의 조카 한 사람이 시골에 집까지 장만하여 주며 피신하기를 권했으나, “나는 늘 순교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 바오로와 함께 순교할 생각이다.” 하며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11일에 아들이 체포되고, 이어서 7월 19일에는 그녀 또한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큰 죄를 지은 국사범과 같이 오라로 꽁꽁 묶여 끌려갔다. 그것은 그녀의 집안이 순교자 집안이요, 그녀의 아들이 외국인과 자주 만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옥에 갇혀 있던 유 체칠리아는 포장 앞에 나가 신문(訊問)을 당하였다. 처음 다섯 번 문초를 당하는 동안에 태형을 2백 30대나 맞았다. 기운이 쇠약한 체칠리아였지만 끝까지 참아내며 자세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여 주어 형리들을 놀라게 했다. 체칠리아는 참수당하기를 바랐으나 나라 법률에 노인에 대한 참수를 금하였기 때문에 재판관들은 때려서 죽이기로 하고 두 번이나 그녀를 불러내어 문초를 거듭하고 위협하며 형벌을 가하였다. 체칠리아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모든 고통을 참아냈다. 마침내 기운이 다하여 옥 바닥에 누워 마지막으로 “예수 마리아!” 하고 소리 내어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 이때가 1839년 11월 23일로 그녀의 나이는 79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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