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선조 때부터 당상 역관을 지내온 중인 계급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심이던 그는 20세 이전에 이미 유식하다는 평판을 들었지만,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제쳐두고 오로지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10년 이상이나 불교와 도교를 통하여 인간과 세상의 기원 및 종말을 깨우치려고 노력하던 중, 당시 훌륭한 양반집의 많은 학자들이 천주교를 믿는다 하여 죽임을 당하니 즐거운 낯으로 죽는다는 말을 듣고는 천주교야말로 참된 종교라고 여겨 천주교에 관한 책을 구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자기 집 장롱에 바른 헌 종이에 영혼, 각혼, 생혼이란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그것을 떼어 앞뒤를 맞추어 보니 그것이 곧 “천주실의”(天主實意)라는 책임을 알았다. 그때 그는 정귀산이란 이가 천주교를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찾아가 교리를 물어 보았으나, 정귀산은 대답하기를 피하고 서울에 사는 홍 암브로시우스(Ambrosius)를 소개해 주었다. 유진길은 곧 홍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교리서를 얻어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천주교의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켜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정하상은 동료 교우들을 모아 선교사 영입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지 아니하여 그는 정하상 바오로(Paulus)를 알게 되어 1824년에 정 바오로와 함께 사신의 역관으로 들어가 북경으로 갔다. 그는 구베아(Gouvea) 주교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고 조선에 선교신부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자 이듬해인 1825년에는 정하상, 이여진 등과 함께 로마 교황께 청원서를 올려 조선교회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하루 빨리 신부를 보내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이 편지 덕분에 1831년 9월 9일자로 조선 대목구가 설정되고, 이어서 선교사들도 입국하게 되었다. 1833년에 중국인 유 파치피코(본래 이름은 余恒德) 신부가 입국하고, 뒤를 이어 모방(Manbant, 羅) 신부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그리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각각 입국하게 되었다. 그래서 복음의 씨앗이 움틀 무렵 새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는 교회의 주요 인물이었으므로 즉시 체포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형제와 친지가 찾아와 배교를 강요했으나 그는 “나 때문에 당신들이 고초를 당할 것을 생각하니 대단히 마음이 괴롭지만, 천주를 안 뒤에 그분을 배반할 수 없으며 육신의 사정보다도 내 영혼의 구원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나를 본받아 교우가 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포장이 그에게 “신부가 숨어 있는 곳을 대라”고 하자 그는 “서양 선생들이 우리나라에 오신 것은 오직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고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지키게 해서 영혼을 구제해 주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 도리를 전하여 죽은 후에 지옥의 영원한 괴로움을 면하고 천당에 올라가 끝없는 진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훌륭한 교를 전하려고 생각하면서 어찌 스스로 나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만약 명예와 돈과 쾌락을 구하려면 무엇 때문에 훌륭하고 돈 많은 고국을 버리고 죽음을 무릅쓰면서 9만 리 먼 곳에 있는 이 나라에 왔겠습니까? 그들을 맞아들인 자는 바로 저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그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숨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은 죄로 주리형과 줄톱질형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때는 1839년 9월 22일이요,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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