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또는 인노첸시오)는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Roma) 근교 알바노라치알레(Albano Laziale)에서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반면 동시대 인물인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는 그를 전임 교황인 성 아나스타시오 1세(Anastasius I, 12월 19일)의 아들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생물학적인 관계보다는 연대기적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교황좌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그는 401년 12월 21일 교황으로 선출되어 성 아나스타시오 1세를 계승하여 4~5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황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재임 중에 무엇보다 교황의 수위권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로마 교회가 다른 모든 교회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며 로마 교회를 표준으로 유럽의 모든 교회가 교계 제도를 정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도뿐만 아니라 신학적 논쟁에서도 최종적인 결정권이 로마 교회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단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대처했고 교회의 규칙을 엄격히 지키도록 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의 도나투스주의(Donatism)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은총을 가볍게 다룬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이단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성 예로니모는 415년에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이듬해인 416년에 펠라기우스주의를 신봉하는 폭도들이 베들레헴 수도원으로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고 성 예로니모와 수도자들을 해치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부제 한 명이 사망하고 수도원이 불탔는데, 이때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는 성 예로니모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고 예루살렘의 주교를 훈계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주교들이 카르타고(Carthago) 교회 회의를 통해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와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의 편지를 받고 그들의 결정을 승인하며 417년 1월에 펠라기우스주의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펠라기우스가 정통 교회로 돌아올 때까지 파문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또한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촉구하였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의 부당한 면직에 대해 투쟁하였다. 그로 인해 황후였던 에우독시아(Eudoxia)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와 대립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유배 가고 그를 대신해 콘스탄티노플 교구를 맡은 주교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지위를 복권하였다. 한편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1세(Alaric I, 395~410년 재위)와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우스 황제(395~423년 재위)의 대립으로 로마가 포위되었을 때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는 알라리크 왕과 라벤나(Ravenna)에 머물던 황제와의 평화 중재를 위해 노력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알라리크 왕의 군대에 의해 410년 로마가 정복당하고 약탈당하는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는 417년 3월 12일 선종하여 교황 성 아나스타시오 1세가 묻힌 포르투엔시스 가도(Via Portuensis)에 있는 폰티아누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은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건축을 시작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교좌성당인 로마의 산 비탈레 대성당(Basilica di San Vitale)을 봉헌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12이지만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는 7월 28일에 기념했었다. 그래서 16세기에 출판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8일 목록에서 교황이자 증거자인 성 인노첸시오를 로마에서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12일로 지정되었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3월 12일 목록에서 로마의 폰티아누스 묘지에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가 있는데, 그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옹호하고 성 예로니모를 위로했으며 성 아우구스티노를 승인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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