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따르면 성 포카스는 오늘날 튀르키예 북부 흑해 연안의 시노프(Sinop, 고대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 지방의 시노페)에 살던 정원사로 자선과 환대로 유명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면서 기도와 관상의 엄격한 생활을 실천했고, 여행자와 순례자에게 잠잘 곳과 음식을 제공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는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고발되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서 언급되었고, 400년경 흑해 연안 폰투스(Pontus) 지방 아마시아(Amasya)의 주교인 성 아스테리오(Asterius, 10월 30일)가 그를 추모하는 글을 썼는데, 그 안에서 전설적인 그의 전기를 전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성 포카스는 시노페의 성문 밖에 살던 은수자이자 숙련된 정원사였다. 그는 기도와 묵상, 자선과 환대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중에 아무런 재판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군인들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포카스라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그를 찾았다. 그는 밤 동안에는 성문이 닫혀 있으므로 다음 날 아침에 그 사람이 사는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했다. 군인들이 자고 일어났을 때 성 포카스는 이미 정원에 자기 무덤을 파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에게 자신이 그들이 찾고 있는 사람임을 밝히고 순교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군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명령을 받았기에 그를 참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마을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성 포카스의 시신을 그 스스로 정원에 새로 판 무덤에 묻어주었다. 나중에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건립되었고 성 아스테리오 주교 시대에 많은 순례자가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동시에 선원들을 통해 그의 유해를 원하는 흑해와 에게해, 아드리아해의 여러 도시로 나눠 모시면서 정원사인 성 포카스는 선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뱀에 물린 사람들이 치유를 청하며 부르는 성인이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뱀에 물린 후 순교자 대성당의 문을 만지면 즉시 낫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5일 목록에서 구세주의 이름을 위해 많은 고통을 받은 후 옛 뱀을 물리친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포카스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의 승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 안에서 나타나는데, 뱀에 물린 이들이 순교자 성당 문을 믿음으로 만지면 독의 힘이 사라지고 즉시 치유된다고 적었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폰투스(Pontus)의 시노페에서 정원사였던 성 포카스가 구세주의 이름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장소의 오류를 바로잡고 순교 시기는 4세기경으로 보았다. 전통적으로 동방 정교회에서 그는 높은 공경을 받았고, 기념일 또한 여러 날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날로 9월 22일에 시노페의 정원사인 성 포카스를 기념하였다. 하지만 옛 “로마 순교록”이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모두 그날이 아닌 3월 5일에 그에 대해 기록했고, 옛 “로마 순교록”이 전설적 이야기를 추가했다면, 개정 “로마 순교록”은 확실한 사실만을 언급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4일 목록에서도 시노페의 주교 순교자인 성 포카스에 대해 기록했는데, 이는 시노페의 정원사이자 순교자인 성 포카스의 이야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파생된 전설적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개정 “로마 순교록”은 시노페의 정원사인 성 포카스에 대해서만 3월 5일 목록에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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