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한영이 막달레나(Magdalena)는 외교인이자 가난한 시골 양반의 집에서 태어났고, 장성한 후에는 권영좌의 후처로 들어가 1840년 1월에 순교한 권진이 아가타(Agatha)의 어머니가 되었다. 남편은 당시 글씨로 유명한 학자였는데, 중년에야 천주교에 뜻을 두고 아내에게도 권하다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가족들에게 천주교인답게 살라는 간절한 부탁을 남겼다. 막달레나는 이 권고에 따라 신자의 본분을 충실히 지키며 살았다. 그녀는 살림이 너무나 어려워서 어느 신자 집에 몸을 의지하며 살았으나 그 가난을 잘 견디어 나갔다. 몇 해 후에 딸 권진이 아가타가 그의 친구 이경이 아가타와 함께 자기에게 피신하여 왔다. 이리하여 셋이 함께 서로 격려하며 신앙을 북돋우고 신심을 닦으며 고신극기를 하였다. 이리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함께 순교의 길을 걷기를 진실로 원하게 되었다. 한 막달레나와 그녀의 딸 권진이 아가타 그리고 이경이 아가타는 배교자의 밀고로 7월 17일에 체포되었다. 포장은 그들의 성명만 물은 다음 막달레나 혼자만 옥에 가두게 하고 젊은 여자 3명은 이웃집에 가두고 지키게 하였다. 포장은 한 막달레나와 두 아가타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렸다. 특히 주리와 곤장의 형벌을 가하였으나 그들은 불굴의 인내로 그것을 참아내었다. 형조로 이송되어 새로운 신문과 고문을 당했으나 순교 의지만을 드러내므로 마침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서소문 밖의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막달레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이때가 1839년 12월 29일이요, 그녀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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