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쿠스 사비오(Dominicus Savio, 또는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토리노(Torino) 근처의 산 조반니 디 리바(San Giovanni di Riva)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아버지 카를로 사비오(Carlo Savio)와 재봉사인 어머니 비르지타(Birgitta)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부터 매일 미사의 복사를 섰고, 7살 때에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가 청소년 교육을 위한 사목을 준비하면서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부탁했는데, 성 도미니코 사비오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 중에 성 요한 보스코는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12살 때에 토리노의 종합기숙학교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오라토리오에 입학하였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했으나 성 요한 보스코 신부의 지도에 따라 특이한 고행보다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결성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성덕을 닦는 데 힘썼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가 조직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는 신심을 키우는 목적 외에도 성 요한 보스코 신부가 하는 일을 여러모로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 출신 22명이 그 모임의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우고 있을 때, 성 도미니코 사비오가 작은 십자가를 들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앙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 나이 어린 소년의 이 한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었다. 그는 학교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했고, 그의 기도 정신 또한 당대 그 어느 위대한 성인에 못지않았다. 가끔 성 요한 보스코가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일은 하지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성 요한 보스코가 고행에 몰두하는 그를 다소 저지했을 때도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성 도미니코 사비오가 얇은 시트 한 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성 요한 보스코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폐렴에 걸리면 어쩌려고?” 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성 요한 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아침 미사 때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 순간이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었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는데,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성 요한 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에게 전해야 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성 요한 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Pius IX)에게 알렸고, 교황은 이 말을 듣고 영국에 대해 더 큰 사목적 배려와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의 건강이 날로 악화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 회복을 위해 1857년 3월 1일 집으로 보내졌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뎌냈지만, 3월 9일 아스티(Asti)의 몬도니오(Mondonio)에서 15살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였다. 그의 시복식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등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 성 요한 보스코의 시성 후인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4년 6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성인 가운데 한 명으로서 소년 성가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축일은 교회의 전통대로 선종한 날인 3월 9일에 지내나, 살레시오회와 피에몬테 교구 등에서는 그의 축일이 늘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5월 6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9일 목록에서 “성 도미니코 사비오가 어린 시절부터 달콤하고 행복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아직 청소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리스도교의 완덕의 길을 걸었다”라고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는 성 도메니코 사비오(Domenico Savio)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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