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는 로마(Roma)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에서 태어난 로마인이었으나 노예 계급 출신이었다. 그는 카르포포루스(Carpophorus)라는 그리스도인 주인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주인에게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주인의 재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해 예금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자 도망쳤다가 포르토(Porto) 근처에서 체포되었다. 채권자들은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그를 풀어주었고, 그는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빚을 받으러 갔다가 회당에서 싸움에 휘말렸다. 유대인들이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해 총독으로부터 심한 매질을 당한 후 사르데냐섬(Sardegna Is.)의 채석장에서 일하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콤모두스 황제(177~192년 재위)의 애첩이자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지닌 마르키아(Marcia)의 요청으로 다른 그리스도인 죄수들과 함께 석방되었고, 노예 신분에서도 풀려났다. 197년경 교황 성 제피리노(Zephyrinus, 12월 20일)는 그에게 부제품을 주고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교회 묘지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겼다. 성 갈리스토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교황의 신임을 얻고 그의 고문이 되었다. 그가 담당하던 묘지는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을 따라 ‘갈리스토 카타콤바’라고 부른다. 217/8년에 교황 성 제피리노가 선종한 후 노예 출신이었던 성 갈리스토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당시 교황직에 가장 유력했던 인물인 성 히폴리토(Hippolytus, 8월 13일) 신부와 그의 지지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들은 교리적인 이유와 규율적인 입장에서 새 교황을 공격했고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성 히폴리토는 추종자들에 의해 대립교황으로 등극했고, 성 갈리스토 사후에도 그의 후계자들을 극구 반대했었다. 그러다가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235~238년 재위)의 박해 때 교황 성 폰시아노(Pontianus, 8월 13일)와 함께 사르데냐섬으로 추방되어 교황과 화해하고 갖은 고문을 당한 후 사망해 순교자로서 공경받게 되었다. 한편 교황으로 즉위한 성 갈리스토는 먼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을 주장하여 삼위일체 교리에 반하는 이단적 이론을 주장한 신학자 사벨리우스(Sabellius) 신부를 파문하였다. 이에 반감을 품은 사벨리우스는 성 히폴리토와 합세하여 성 갈리스토가 정통 교황이 아니며 초대교회의 엄격한 속죄 행위를 완화해 신자들의 생활을 해이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교황 성 갈리스토는 모든 비방을 묵묵히 인내하며 오히려 반대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신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당시 신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노예 남자와 자유인 여자와의 결혼을 허용하였다. 그럼으로써 부유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비슷한 신분의 이교인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배교의 위험에 놓이는 것을 막고자 했다. 교황 성 갈리스토는 222년경 선종해 10월 14일 로마의 아우렐리아 가도(Via Aurelia)에 있는 칼레포디오(Calepodius) 카타콤바에 묻혔다. 4세기경부터 교황 성 갈리스토의 이름이 순교자 축일표에 나오며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 공식적인 박해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시민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4일 목록에서 교황 성 갈리스토 순교자에 대해 전해주었는데, 그가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222~235년 재위)의 명령에 따라 감옥에 갇혀 오랫동안 굶주리며 매일 채찍질을 당하다가 창문 밖으로 던져져 우물에 빠져 순교했다고 적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갈리스토가 사르데냐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한 뒤에 부제로서 후대에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아피아 가도의 묘지를 관리했으며, 그곳에서 미래의 후손들이 공경할 수 있도록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았다고 했다. 또한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는 올바른 교리를 장려하고 반대자들과도 자비롭게 화해했으며, 마침내 성실한 주교직에 빛나는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날은 로마의 아우렐리아 가도에 있는 칼레포디오 묘지에 그의 시신이 안장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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