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에서 태어난 성 루도비쿠스 베르트란두스(Ludovicus Bertrandus, 또는 루도비코 베르트란도)는 동향 출신으로 도미니코회의 신부이자 성인품에 오른 성 빈첸시오 페레리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가 세례받은 성당, 같은 세례대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장성하여 18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했고, 1547년 발렌시아의 대주교인 빌라노바(Villanova)의 성 토마스(Thomas, 9월 22일)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수련장으로 선발되어 거의 30여 년을 역임할 정도로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과 정신을 충실히 지키며 체득해나갔다. 그는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또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영적 가르침을 주었다. 1557년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 그녀가 추진하는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 운동을 적극적으로 격려했고, 그해에 페스트가 발렌시아에 만연하자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영웅적 구호 활동을 펼쳤다. 당시 에스파냐는 국운이 가장 강대하던 때로 신대륙에 활발히 진출했고, 여러 수도회에서도 선교사 파견에 적극적이었다.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도 역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나서길 간절히 원했다. 마침내 그의 뜻이 이루어져 1562년 선교사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로 가게 되었다. 그는 원시림을 맨발로 다니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 수많은 원주민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또한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도록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상인들과 권력자들의 사주를 받은 괴한으로부터 수차례 공격을 받았다. 한번은 괴한이 총으로 그를 해치려 하자 십자성호를 그으니 총구 부분이 십자가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 무사할 수 있었다. 이렇듯 그의 거룩한 삶에서 나오는 기적과 예언 그리고 언어의 은사를 통해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했다. 1569년에 발렌시아로 돌아온 그는 여생을 오노프리우스 수도원의 원장으로 지내며 고행과 설교에 전념하고 많은 이들의 영적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는 1581년 사순절에 발렌시아 주교좌 대성당에서 설교하던 중 졸도하여 그 길로 병석에 누워 그해 10월 9일 임종을 맞이했다. 그는 1608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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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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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루도비코 베르트 ...] |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도: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복음화에 앞장 | 주호식 | 2010/10/05 | 349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