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루푸스(또는 루포)는 4세기 말경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툴(Toul)에서 상류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세례를 받고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성 루푸스는 젊어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아를(Arles)의 성 힐라리오(Hilarius, 5월 5일) 주교의 여동생인 피메니올라(Pimeniola)와 결혼하여 7년을 살았으나,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망을 이길 길이 없어서 서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성 루포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프랑스 남동부 칸(Cannes) 앞바다의 황량한 섬(오늘날의 생토노라[Saint-Honorat] 섬)에 성 호노라토(Honoratus, 1월 16일)가 세운 레랭(Lerins) 수도원으로 가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 아내도 수녀원에 들어갔다. 성 루포는 426년에 트루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겸손 · 고행 · 청빈 등 수도자의 기본적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극히 검소한 의복을 입고 나무판자 위에서 잠을 잤으며, 개인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많았고, 거의 매일 단식을 실천했다고 한다.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제르마노(Germanus, 7월 31일)는 영국 주교들의 요청으로 펠라기우스 이단과 싸우기 위하여 영국으로 갈 때 성 루포를 자신과 동행하도록 했다. 이들의 파견은 교황 성 첼레스티노 1세(Coelestinus I, 4월 6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영국으로 가는 도중 나중에 성녀가 된 어린 시절의 성녀 제노베파(Genovefa, 1월 3일)를 만나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두 주교는 기도와 설교 그리고 기적을 통해 펠라기우스 이단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노력한 후 다음 해 부활절 직후 갈리아 지방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공로 때문에 성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 8월 21일)는 성 루포를 이렇게 칭송하였다. “사제 중의 사제요, 주교 중의 주교요, 프랑스 지방의 최고 성직자이며, 윤리의 기준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하느님의 친구이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451년 그는 훈족(Huns)의 아틸라(Attila)로부터 트루아를 기적적으로 보호한 것으로 여겨지고, 마귀 들린 소녀와 중풍 병자 등을 치유하는 여러 기적을 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만년에 그는 트루아 인근의 산중으로 들어가 은수자로 생활하며 관상 생활에 전념하다가 주교좌로 돌아와 선종한 후 트루아에 그가 세운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7월 29일 목록에서 성 루포 주교가 펠라기우스 이단을 근절하기 위해 오세르의 성 제르마노와 함께 영국에 다녀왔고, 아틸라로부터 트루아를 지킨 인물이라고 기록하였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주교 복장을 하고 아틸라의 공격을 막거나 칼을 들고 악을 상징하는 용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프랑스에서 그는 성 루(Loup) 또는 뢰(Leu)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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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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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루포(7.29)] | 성 루포: 트루아의 주교 | 주호식 | 2011/12/19 | 415 | 0 |
1 | [루포(7.29)] | 트루아의 성 루포: 트루아 수호자요 최고성직자 | 주호식 | 2010/07/31 | 361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