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일루미나타는 중세 시대에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Ravenna)에서 큰 공경을 받던 동정녀이다. 그녀의 이름이 등장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37년에 콘라트 2세(Conrad II) 황제가 라벤나의 클라세(Classe)에 있는 성 아폴리나레(Sant’Apollinare) 수도원의 원장에게 토디 지역에 있는 성녀 일루미나타 수도원을 기증한 것이다. 그 무렵에 출판된 성녀 일루미나타의 전설적인 전기에 따르면 그녀는 라벤나 근처 팔라촐로(Palazzolo)에서 이교도 부모의 딸로 태어나 카이사레아(Caesarea)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일루미나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했던 라벤나의 태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로 인해 성녀 일루미나타는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천사가 그녀를 풀어주고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로 인도했는데, 그녀는 그 길을 따라 움브리아(Umbria) 지방 페루자(Perugia) 남쪽의 베토나(Bettona)와 마사마르타나(Massa Martana)까지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그 사이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부모가 와서 그녀와 합류하였다. 마사마르타나의 태수는 그녀를 다시 체포하여 부모와 함께 감옥에 가두었다. 성녀 일루미나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가 통치하던 303년 11월 29일 부모와 함께 감옥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들의 시신은 토디 시내에서 3km 정도 떨어진 파피니아노(Papiniano) 또는 바뇨 디 파피니오(Bagno di Papinio)로 불리는 곳에 안장되었다. 나중에 그곳에 그녀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과 수도원이 생겼고, 성녀 일루미나타의 유해 일부가 토디의 산타 마르게리타(Santa Margherita) 수도원에 안치되면서 오늘날까지 토디에서 그녀에 대한 공경이 이어지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29일 목록에서 움브리아 지방 토디에서 동정 성녀 일루미나타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