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인하르트는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세게베르크(Segeberg)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일생을 슬라브족 선교에 헌신한 올덴부르크(Oldenburg)의 성 비켈리누스(Vicelinus, 12월 12일)가 세운 이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성인의 삶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당시 이교도 지역이었던 리보니아로 가는 상인들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 오늘날의 라트비아(Latvia) 지역에 사는 세미갈리아와 라트갈리아 그리고 리보니아 사람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선교 사업에 주력하였다. 그는 오늘날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 남동쪽 다우가바(Daugava) 강변의 이케스코라(Ykescola)에 정착했다. 1185-1186년에 그는 석조 성당을 지어 동정 성모님께 봉헌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인들의 공격이 계속되자 고틀란드(Gotland) 섬에서 석공들을 데려와 미래의 침략에 대비해 요새를 건설하였다. 이 건축물들은 발트 해 연안에 사는 종족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알려진 석조 건축물이었다. 그는 최근에 개종한 이교도들을 위한 선물로 살라스필스(Salaspils)에 또 다른 석조 성(城)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 마인하르트는 리보니아를 떠나게 되었다. 1186년 잠시 독일로 돌아온 그는 브레멘(Bremen)의 대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리보니아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주교직을 승인한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는 1190년 일단의 수도자들이 성 마인하르트의 선교 사업에 동참하도록 허락했다. 그들은 성 마인하르트 주교를 도와 리보니아에서 방인사제를 양성하는데 주력하였다. 클레멘스 3세를 뒤이은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 역시 그의 서한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성 마인하르트의 선교 사업에 대한 헌신과 노고를 높이 평가하였다. 성 마인하르트는 1196년 8월 14일 또는 10월 11일 리보니아의 성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 후 13세기에 그의 유해는 리가 대성당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존재는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선교사제로서 그의 성덕을 언급하면서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1993년 9월 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그는 메인아르두스(Meinard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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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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