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는 프랑스의 부유한 귀족 가문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늘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던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15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가서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상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상인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던 중 당시 수백 년에 걸쳐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아랍계)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1212년 무어인들은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총공격으로 톨로사(Tolosa)에서 패배해 에스파냐 남쪽 그라나다(Granada)로 밀려난 상태였지만, 노예무역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그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석방을 위한 대속금을 내고 많은 노예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하지만 몇 년간의 속량 활동으로 그의 막대한 재산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1218년 8월 1일, 성모님께서 그에게 발현하시어 모슬렘에게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구출하는 수도원을 설립하라 말씀하시는 환시를 보았다. 그는 성모님의 분부대로 그리스도인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설립을 결정하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아라곤(Aragun) 야고보 1세 왕과 상의하고 그의 지지와 후원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왕의 초청으로 그 당시 아라곤에 와 있던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1월 7일)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노예 해방을 위한 속량의 성모회’(메르체다리오회, Mercedarian Order)를 설립했다. 이 수도회는 1235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수도회의 회원들은 세 가지 수도 서원 외에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석방을 위해서는 자신을 인질로 바칠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 네 번째 서원도 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 역시 노예 석방을 위해 헌신하던 중 북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대신해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무어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돛대도 키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 바다로 보냈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헌신과 고령으로 인해 허약해진 그는 여생을 기도와 보속으로 보내다가 1256년 수도원 총장직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성탄절 밤에 바르셀로나에서 선종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바르셀로나(Barcelona) 왕립 문서 보관소의 기록을 근거로 5월 6일을 선종일로 보고 있다. 그는 1628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664년 보편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도록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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