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충청남도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성스러운 피를 흘렸던 곳,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무덤 터가 2010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사실은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전주대학교 교수)가 발간한 “박해기 서천지역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 자료집을 통해 밝혀졌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들 가운데 천방산(千房山, 324m) 산막골(현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은 신앙 선조들이 1839년 기해박해 이후 군란을 피해 인적 없는 산간벽지에 숨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자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년) 주교와 페롱(Feron, 權, 1827-1903년)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밝혀졌다. 또한 이곳은 순교자들이 심한 형벌을 받고 피를 흘렸던 점으로 보아 순교사적지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페롱 신부는 1858년 9월 24일과 25일, 1859년 9월 27일 등 총 6통의 편지를 산막골에서 작성했다. 이 산막골 교우촌에 대해 그 동안 경북 상주시 모동면 신흥 1리에 있는 산막골로 이해해 왔으나 페롱 신부의 집 주인이자 복사로 활동했던 황기원, 황천일 등이 거주했던 곳이 서천 산막동이었던 점 등으로 보아 페롱 신부가 사목 중심지로 삼아 여러 차례 서한을 작성한 곳은 서천 산막골(현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이 확실하며 신앙 선조들이 공동체를 이뤄 산 곳임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이곳은 황석두(黃錫斗, 1813-1866년) 루카 성인 일가가 충청북도 연풍에서 이주해 와 1866년 병인박해가 있기 전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았던 뜻 깊은 교회사적지이기도 하다.
특히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 78번지의 천방산 기슭은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와 판교면 금덕리의 작은재 공소 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이름 없이 살다간 숱한 신앙 선조들의 줄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1994년 산림도로 개설과 함께 줄무덤 터는 콘크리트에 묻히고 말았으며, 당시 공사현장에서 숱한 유골과 함께 발굴된 십자가와 묵주 등 성물도 연고자가 없어 인근에 다시 묻혔으나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집에 의하면 조선조 말 박해시기에 충청남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서천 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었고, 처형된 신자가 57명이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산막골 교우촌은 서천 일대의 사목 중심지로서 주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돌보는 이가 없어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대전교구 서천 본당 주임으로 정성용(鄭成溶) 요한 신부가 부임하면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숭고한 터전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되었다. 서천 본당은 2010년 11월 13일 천방산 고갯마루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 현양미사’를 봉헌하고,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에 세워진 성모동산과 공소 터에서 작은재를 오르는 산길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 14처에 대한 축복식도 가졌다. 서천 본당은 독뫼 공소와 작은재 공소 터에 기념비를 세워 순례객들의 교우촌 순례길을 돕고 있으며, 작은재 줄무덤 터에도 기념비를 세워 천주교 백색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2018년 10월 14일 서천 본당은 작은재에서 산막골 · 작은재 순교사적지 재단장을 기념하는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2010년 성지 선포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내포 성지 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서천 본당은 자체 봉헌금과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두 성지에 대한 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작은재 줄무덤 표지석 위쪽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상과 십자가를 세우고, 성지로 오르는 길목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했다. 작은재 초입 독뫼 공소 터 앞에도 예수님상을 설치했다. 산막골에는 예수님상을 중심으로 황석두 루카 성인상과 돌제대, 십자가의 길 14처와 순례자를 위한 작은 쉼터도 마련되었다. 서천 본당은 두 순교사적지를 잇는 옛길 3.5km를 순례길로 복원하고, 서천 지역 교회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순교사적지로서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갔다. 그리고 2021년에는 작은재 줄무덤 성지에 순교자 가족 묘역을 조성하고 순교자 이화만 바오로와 장남 이범인 요한 크리소스토모, 차남 이범식 그레고리오를 기리는 '삼부자 순교비'를 세웠다. 한편 대전교구는 2023년부터 성지 전담신부를 발령해 성지에 상주하며 순례자를 맞이하고 성지를 개발하도록 했다. [출처 : 관련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24년 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