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트란드는 오늘날의 툴루즈 교구를 맡아 50년간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그는 부친과 같이 군인이 되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성직자가 되었다. 1075년경에 그는 콤멩주스(Comminges) 즉 지금의 툴루즈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규칙을 교구 사제들에게 적용시키면서 일대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아무도 받아 주는 이가 없었다. 그는 수차례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또 국왕 필립 1세가 단죄된 푸아티에 시노드(Synod of Poitiers)에 참석했다는 이유 때문에 생-오랑 수도자들의 성당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이런 와중엘 상 파라 올시아 군대가 베르트란드의 교구를 점령했을 때, 그는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침략자를 몰아냈다. 이때부터 그의 교구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 사건은 매년 5월 2일마다 기념되는데,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V)는 주교좌성당을 순례하는 사람에게 전대사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1309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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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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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베르트란드(10 ...] | 성인 이름에 담긴 뜻: 베르트란드(Bertrand) | 주호식 | 2021/06/07 | 201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