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첸시오 마리아 스트람비(Vincentius-Maria Strambi)는 이탈리아의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에서 어느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주 짓궂게 장난치는 아이였지만, 맨발이거나 혹은 남루한 옷을 입은 부랑아를 보면 자기의 외투와 신발조차 벗어주는 갸륵한 소년이었다. 그는 교구사제가 될 마음으로 공부했으나 서품 직전에 십자가의 성 바오로(Paulus, 10월 19일)의 영향을 받고 예수 고난회원이 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극심하던 부모의 반대를 이기고 마침내 수련을 받게 되었다. 그는 수도원 내의 여러 직책을 맡았고 1781년에 관구장이 되었으며, 또 1801년에는 자신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체라타와 톨렌티노(Tolentino)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그의 불굴의 노력은 이탈리아 전역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놀라운 쇄신을 불러일으키는 주교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808년 그는 나폴레옹의 정책에 반대하여 추방되었으나, 1813년 나폴레옹이 실각함으로써 교구로 돌아왔다. 교황 비오 7세(Pius VII) 서거 때에 그도 역시 사임하였으나, 그의 열렬한 친구이던 레오 12세(Leo XII)의 등극과 더불어 그는 교황의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이 모든 직책에서도 그는 수도생활의 정신을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기(Anna Maria Taigi, 6월 9일)가 예언한 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셨고, 1824년 1월 1일 79살의 생일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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