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태생의 성 귈리엘무스(또는 귈리엘모)는 한때 프랑스의 군인으로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통회자가 되어 로마(Roma)를 순례했는데, 여기서 교황 성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 7월 8일)에게 보속을 청하였다. 교황의 명에 따라 그는 다시 예루살렘 순례를 한 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는 은둔소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성덕이 차츰 알려지면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몬테 브루노(Monte Bruno)에 정착했다가 더욱 한적한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마침내 말레발(또는 말발 Malval)에 안착하였다. 그는 1155년 9월에 그곳의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맹수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는 알베르투스(Albertus)라고 알려진 제자 한 명만을 키웠다. 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리날도(Rinaldo)라 불리는 한 의사가 제자로 살겠다고 들어왔다. 그들이 성 귈리엘무스 은수자회, 곧 귈리엘미트회(The Gulielmites)의 시작이었다. 그 후 이 은수자회는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Flandre) 그리고 독일로 퍼져나갔으나 나중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로 통합되었다. 그는 빌리암(William) 또는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20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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