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의 영국 관구의 설립자인 아넬루스(또는 아넬로)는 성 프란치스코가 피사에 머물 때 직접 입회시킨 초기의 제자에 속한다. 그는 파리 수도원에 파견되었다가 원장이 되었으나, 1224년 성 프란치스코가 영국 관구 설립을 위하여 그를 대표자로 파견하였다. 그는 부제에 불과하였다. 8명의 수사들이 영국에 들어갔으나 사제라고는 리카르두스(Richardus) 한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의 회칙에 따라 돈을 한 푼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버 해협을 건널 때 페캄프의 수도자들이 대신하여 통행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먼저 캔터베리에 그 다음에 런던에 거주지를 정하였다. 그들의 집은 낮 동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고, 밤이 되면 그들의 집이 되는 그런 형편이었다. 프란치스코의 극도의 가난 생활을 여기서도 계속하여 수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아넬루스는 도버 해협을 건넌 지 11년 되던 해, 41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의 가난 정신은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와 견줄만 하였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칠 때면 늘 눈물을 글썽이며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크게 반대하였다. 그는 3일 동안의 투병 끝에 “오소서, 오 감미로운 예수여” 하며 기도하는 중에 운명하였다. 그의 축일은 오늘날 버밍햄에서 성대히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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