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년에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에 의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성 베라르도(Berardus, 1월 16일)와 동료들이 이듬해 모로코에서 순교하는 일이 생겼다. 그들은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었고, 그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 성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다음 해에 토스카나(Toscana)에서 여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선교를 자원했다. 그들의 이름은 성 사무엘(Samuel), 성 안젤루스(또는 안젤로), 성 레오(Leo), 성 돔노(Domnus), 성 니콜라오(Nicolaus), 성 후골리노(Hugolinus)였다. 그들은 먼저 에스파냐로 가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칼라브리아(Calabria)의 관구장인 성 다니엘(Daniel) 신부를 만났다. 성 다니엘이 이끄는 선교단은 아프리카 북서부의 모로코에 도착해 유럽 상인들이 거주하던 세우타(Ceuta) 근교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에 그들은 서로 고해성사를 받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면서 기도로써 밤을 지새우고, 주일 아침에 세우타 시내로 들어가 길거리에 서서 복음을 전하며 무함마드(Muhammad)의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시작했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도시에서 그들의 설교는 곧 큰 소란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결국 체포되어 술탄 앞으로 끌려갔다. 술탄은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의 남루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는 모두 미쳤다고 판단해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무어인들은 감옥에 갇힌 선교사들을 마음대로 놀리고 학대하였다. 한 주일이 지난 다음 주일, 술탄 앞에 선 그들은 자기들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선교사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무어인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무함마드를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갖은 고문은 자행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 없음을 깨닫고 그들을 세우타 성 밖으로 끌고 가서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상인들에 의해 세우타 교외에 묻혔고, 나중에 에스파냐로 옮겨 모셨다. 성 다니엘과 여섯 동료는 1516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3일에 그들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0일로 옮겨 그들의 선교활동과 순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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