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렉산데르 브라이언트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서머싯(Somerset)에서 태어나 옥스퍼드(Oxford)의 하트퍼드 대학(Hertford College)에서 공부하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대학을 떠난 그는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하여 프랑스 북부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 들어갔고, 이어서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서 수학한 후 1578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다음 해에 선교사로서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고향인 서머싯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1581년에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그해 4월 28일 로버트 퍼슨스(Robert Persons) 신부의 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여기서 영국 국교도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고,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대하는 서약을 하라는 위협에도 끝까지 견디어냈다. 런던탑에 갇혀 있는 동안 그는 잉글랜드에 있는 예수회 신부들에게 편지로 입회를 청원해 감옥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성 에드문도 캠피언(Edmundus Campion)과 성 랄프 셔윈(Ralph Sherwin) 신부와 함께 12월 1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알렉산데르 브라이언트 신부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12월 1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1일 목록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 예수회의 성 에드문도 캠피언, 성 랄프 셔윈, 성 알렉산데르 브라이언트 신부가 가톨릭 신앙 때문에 많은 고문과 고통을 당한 후 런던의 타이번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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