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에네쿠스(또는 에네코)는 11세기 초 에스파냐 아라곤(Aragon)의 칼라타유드(Calatayud)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산 후안 데 라 페냐(San Juan de la Pena) 왕립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복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고 수도원장으로도 뽑혔으나 독수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원장직을 사임하고 사라고사(Zaragoza) 지방의 토베드(Tobed)에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는 뛰어난 성덕으로 말미암아 당대에 이미 가장 거룩하고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은수자로 여겨졌다. 팜플로나(Pamplona)의 왕인 산초 가르세스 3세(Sancho Garces III)는 수도원 개혁을 위해 그를 찾았고, 그에게 부르고스(Burgos) 지방 오냐에 있는 베네딕토회 구세주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겼다. 성 에네코는 왕국 내 수도원들의 개혁을 위해 힘썼고, 산초 가르세스 3세 왕의 고문으로서 또 그의 아들인 가르시아 산체스 3세(Garcia Sanchez III) 왕의 고해 사제로도 활동했다. 성 에네코의 영향력은 수도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사회에도 크게 미쳤는데, 그는 여러 도시의 분쟁을 가라앉히고 평화의 전달자로서 큰 공헌을 남겼다. 어느 해에 에스파냐 전역에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의 피해가 극심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와 기도를 청했다. 그가 기도를 바치자 큰비가 내려 기근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적으로는 그가 불과 빵 세 개로 큰 군중을 배불리 먹게 한 일도 있었다. 1060년경 6월 1일 오냐의 수도원에서 그가 선종하자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그 지방에 살던 유다인과 무슬림들도 크게 슬퍼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성덕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V)에 의해 승인되었고, 1258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는 그의 무덤을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대사를 허락했다. 에스파냐에서 그는 오냐의 성 이니고(Inigo)로 불리는데,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6월 1일 항목에서 오냐 수도원의 원장인 성 에네코가 거룩함과 기적으로 유명했고, 평화의 사람인 그가 선종했을 때 유다인과 무어인들도 애도를 표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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