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부터 30세까지 비알라르의 성녀 에밀리아(Aemilia)는 홀로 된 그녀의 부친을 도와 드리며, 자신이 태어난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의 게일락(Gaillac)에 있는 부친의 소유지에 살던 어린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 후 1832년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그 돈으로 게일락에 집을 구입한 후부터 조직적인 방법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도우려는 다른 지원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성녀는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1835년에는 알제리(Algeria)에 제2의 활동 기지를 세웠다. 그로부터 그녀의 사업은 날로 발전하였으나 알제리의 한 주교와의 분쟁으로 인하여 큰 공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결국 1842년에 그 주교는 에밀리아 원장을 파문해 버렸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였지만 결국은 자신의 공동체와 함께 프랑스로 철수해야 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성녀 에밀리아 원장의 수도회는 예루살렘과 호주 등지를 포함하는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이 수도회는 발현의 성 요셉 수녀회로 초창기에는 비록 알제리에서와 같은 불행한 일도 있었지만 잘 극복해 나갔다. 성녀 에밀리아는 매우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진정한 사랑의 영감을 받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거행된 시성식에서 성녀 에밀리아는 ‘현명하고 이해심 많으며 또 다정다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성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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