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상시-러-롱에서 1765년 11월 27일에 태어난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oanna-Antide Thouret)는 제혁업자의 딸로 그녀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가사를 전담하다가, 1787년에 파리(Paris)의 성 빈첸시오 애덕 자매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1793년 혁명 정부가 프랑스의 수도회를 해체시켰을 때, 그녀는 그때까지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시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여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한편 혁명으로 피해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주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1796년 스위스로 도망가야 했다. 그 후 그녀는 브장송(Besancon)에서 학교를 개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4명의 자매들과 함께 1799년에 학교를 세웠다. 그녀의 공동체가 급성장하자 앙티드는 벨러브에 불우여성 수용소를 세웠다. 1807년 그녀의 회칙이 브장송의 러 코즈 대주교로부터 승인받자 이 단체는 스위스, 사부아(Savoie), 나폴리(Napoli) 등지로 확산되었다. 1818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이 단체를 성 빈첸시오 드 폴의 보호 아래 있는 애덕의 딸 수녀회란 이름으로 승인하였다. 만년에 그녀는 이탈리아에 수녀회를 세우는데 전념하다가 1826년 8월 24일 운명하였고, 1934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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