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로렌(Lorraine) 지방 태생의 요한 마르탱 모예(Joannes Martinus Moye)는 스트라스부르(Strasburg)의 예수회 대학교와 메스(Metz)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754년 메스 교구의 사제가 되었다. 그는 가난한 시골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고, 1767년 많은 어려움 중에도 천주 섭리의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같은 해에 생디에(Saint-Die) 신학교의 학장이 되었지만 선교사가 되고픈 열망에 결국 1769년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773년에 중국 사천(四川) 교구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반복되는 위협과 투옥 중에도 끊임없이 신앙을 선포하였고, 천주 섭리 수녀회의 회칙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동정녀회’를 설립하여 병든 이들을 돌보고 자신들의 집에서 여자와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고된 노동과 질병으로 인해 그는 1784년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로렌과 알자스(Alsace)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그는 프랑스 혁명 중에 추방되어 수녀회와 함께 오늘날 독일 지방인 트리어(Trier)로 이동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트리어를 포위했을 때 그 도시에는 장티푸스가 만연했고, 그와 그의 수녀회는 헌신적으로 병든 이들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요한 마르탱 모예 신부 역시 같은 병에 걸려 선종하였다. 그는 1954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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