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네스 보스트(Joannes Boste, 또는 요한 보스트)는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모얼랜드(Westmorland, 오늘날의 컴브리아주[Cumbria])의 더프턴(Dufton)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애플비(Appleby)의 중등학교를 거쳐 옥스퍼드(Oxford)의 퀸즈 대학(Queen’s College)에서 수학하여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1572년 그 대학의 연구원이 되었다. 2년 뒤 애플비로 돌아온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 헌장 아래 첫 교장이 되었다. 1576년에 가톨릭교회로 개종한 그는 영국을 떠나 프랑스의 랭스(Reims)로 가서 158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즉시 잉글랜드 선교 길에 올라 주로 북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하였다. 그는 요인 암살의 주요 표적이 되면서도 10여 년 동안 체포를 피해 활동했지만, 1593년 더럼(Durham) 근교에서 가톨릭 신자였다 개종한 프란치스코 이글스필드(Francis Egglesfield)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되었다. 런던탑에 갇혀 심문을 받은 그는 다시 더럼으로 이송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1594년 7월 24일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요한 보스트 신부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7월 24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4일 목록에서 판사 앞에서도 동료들을 위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성 요한 보스트 신부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의 더럼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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