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 평소 사냥을 즐기는 그는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감이 덤불 속에 숨자 하인들에게 덤불을 태우라고 명했다. 그때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쳐서 옥수수밭을 비롯해 숲 전체를 태우고 인근 마을까지 불태우는 불상사로 번졌다. 거센 불길에 당황한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근처에 있던 한 가난한 농부가 방화범으로 오해받아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뒤늦게 한 소작농이 누명을 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고심 끝에 재판관 앞에 가서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났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으로 그 피해를 보상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성 콘라두스와 그의 아내는 재물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이 모든 일이 다 하느님의 섭리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성 콘라두스는 수하 사람들을 모두 자유로운 신분으로 해방해주고, 아내는 클라라회에 입회하도록 주선한 후 자신은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어 순례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로마와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시칠리아(Sicilia)의 팔레르모(Palermo)를 거쳐 섬의 남쪽 끝에 있는 노토(Noto) 계곡의 어느 한적한 곳의 동굴에서 30년 이상을 살았다. 만년에 그의 영성은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했고, 예언과 기적의 은사도 받았다. 성 콘라두스는 사람들로부터 숨은 은둔생활을 원했지만, 그의 뛰어난 성덕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고자 몰려들었다. 임종하기 얼마 전, 그는 주교를 방문해 고해성사를 본 후 다시 노토 계곡으로 돌아와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처럼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벗 삼아 살다가 1351년 2월 19일, 자신이 예언한 날에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장례식은 그의 유언대로 노토 지역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성당에서 거행되었고, 그곳에 묻혔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곳은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머물던 동굴이 있는 산은 훗날 콘라드 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Leo X)는 노토 지역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허락했고, 후에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그에 대한 공경이 프란치스코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는 비록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프란치스코회에서 2월 1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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