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폼필리우스 마리아 피로티(Pompilius Maria Pirrotti, 또는 폼필리오)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몬테칼보(Montecalvo)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일을 하던 갈라상스(Calasanz)의 성 요셉(Josephus, 8월 25일)이 세운 피아리스트회(The Piarist Fathers)에 입회하여, 1728년에 서약하고 성 니콜라우스(Nicolaus)의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풀리아(Puglia)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의 학덕이 너무나 뛰어나서 에밀리아(Emillia)와 베네치아(Venezia)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나폴리(Napoli)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박해를 당하고 추방되었다. 그 후 그는 46세의 일기로 선종했는데, 그의 성덕을 흠모해오던 페르디난도 2세가 그의 시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1890년에 시복되었고,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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